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Sep 18. 2016

저는 워킹맘이 아니라서


“전 워킹맘이 아니라서 배민프레시가 너무 어려워요. 페북에서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르겠어요"


 배민프레시 페이스북 글의 반응이 안나올 때마다 내가 뱉은 말이다. 배민프레시는 반찬, 국, 도시락 빵을 신선배송하는 30대 워킹맘을 위한 서비스다.   

자취생이었던 나에게 배달의민족은 이해하기 쉬운 서비스였다. 나와 같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콘텐츠에 반응할지 상상하는건 나에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민프레시는 달랐다.


배민프레시 페이스북을 맡아서 하면서 나는,
설명충이 되기도 하고


배민의 톤앤매너를 그대로 따라써보기도 하고


아무도 안읽을거 알면서 광고멘트를 그대로 쓰기도 했다.


맞아, 나 같아도 좋아요 안눌러!


 지금 생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 워킹맘이 아니라서' 라는 말을 뱉었다는게 너무 부끄럽다. "저는 일을 참 못해요." 라고 말하고 다닌거나 다름없으니.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모든 요일의 기록'에선 이러한 생각을 본인도 했었다고-너도 그럴 수 있다고-우리 모두 그렇게 일하고 있다고-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신입사원 때 자동차 광고 카피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팀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운전면허증도 없는데요?"
그때 팀장님이 뭐라 대답하셨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그 어리석은 질문만은 똑똑히 기억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걸까, 나는.

카피라이터는 자꾸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직업인데. 운전면허증도 없지만 자동차 헤드라이트 모양 하나 바뀐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미혼 카피라이터는 깐깐하게 분유를 고르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20대 카피라이터가 60대 노모가 되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수 있어야 한다. 남자들이 여자 속옷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50대 팀장님이 모바일 게임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그건 일종의 거짓말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동차에 대한 가장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건 아니니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엔 하나에 2만원이나 하는 사과를 사 먹는 사람들을 위한 카피를 써야만 했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 모든요일의 기록, 김민철
크게 위로받았던 '모든 요일의 기록'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해야한다면 더 부지런해지자라고 다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 부지런해지자.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자. 그래, 더 부지런해지자.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은 망해도 배우는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