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Feb 04. 2016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첫 회의

#1

이사님의 메시지를 받은 며칠 후, 나는 반차를 쓰고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에 가게 되었다. 늦은 저녁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다들 웃으면서 재밌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꼭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그렇게 멍 때리며 보고 있을 때 이사님이 오셨다. 이사님은 회사 앞 돼지갈비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한참 돼지갈비를 태우면서 먹고 있던 중 이사님은 물었다.

"승희 씨는 올해 계획이 어떻게 돼요?"

"아.. 저는 올해 유럽여행을 가려고요. 유럽여행 가서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제가 뭘  잘하는지 생각도 정리하고 오려고요."

"유럽여행 좋죠. 근데 나도 유럽여행 가봤는데, 노느라고 생각보다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고. (웃음) 그러지 말고 우아한형제들에서 같이 일해볼래요?"


잊을 수 없었던 돼갈


내가 정말 좋아하는 회사였고, 일해보고 싶은 회사였지만 막상 이사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머리 속이 복잡했다. '당장 서울에서 살 집이 없는데 어떡하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어쩌지? 그리고 이미 큰 회사에서 (난 그 당시 우아한형제들이 엄청 큰 회사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사님 제가 (이미 큰) 배달의민족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웃음) 지금 이 돼지갈비집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배달의민족'에 대해서 물어보면 얼마나 알 것 같아요? 열명 중에 한 명 알려나... 이 좋은 서비스를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요. 앞으로 배달의민족 광고도 시작할 거고 적극적으로 마케팅도 할 생각이에요. 승희 씨가 들어와서 우리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요."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이 한마디가 너무 설레었고 그렇게 난 우아한형제들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4년 3월 3일 첫 출근 8시 23분
우아한형제들 사원증





#2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갔던 첫 회의를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회의 때 이사님께서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영화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아는 음식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나마 식객...?) 내가 이렇게 영화를 안 보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음식 영화가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른 분들이 말하는 영화들도 다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으니. (@#$%^&블라블라....)


영화 '식객'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음식 영화에서 페스티벌로 넘어갔다. 배달의민족의 타깃인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이야기를 하다가 페스티벌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무슨 페스티벌을 이야기하는지 어리둥절했다. '대학교 축제 이야기하는 건가?' 서울에 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그 흔한 페스티벌들이 그때 당시 나에겐 처음 듣는 페스티벌들이었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록 페스티벌 등등...'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2


마케팅 멤버들 모두 페스티벌 갔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 아쉽게도 난 공감할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들어갔던 첫 회의에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그랜드 민족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왔었고 그 패러디 아이디어는 실제로 그 해 가을에 실현이 되었다. 그 페스티벌을 주도한 대장은 페스티벌을 정말 사랑하고 많은 페스티벌을 경험 해 본 마케터였다. 그 마케터가 페스티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페스티벌에 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준비할 수 있었고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랜드 민족 페스티벌을 준비할 수 있었다.

회의 때 나왔던 아이디어가 실현되었던 그랜드 민족 페스티벌


마케터는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음식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페스티벌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 때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난 우아한형제들에 들어오기 전, 마케팅 교육을 듣고 마케팅 서적을 열심히 읽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고의 마케팅 교육은 바로 나의 '경험'들이었다는 그 날 깨달았다.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많이 쌓일수록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일을 할 때 어떤 반응과 공감이 돌아오는지 상상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케터에겐 정말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우아한형제들에 가게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