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사님의 메시지를 받은 며칠 후, 나는 반차를 쓰고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에 가게 되었다. 늦은 저녁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다들 웃으면서 재밌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꼭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그렇게 멍 때리며 보고 있을 때 이사님이 오셨다. 이사님은 회사 앞 돼지갈비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한참 돼지갈비를 태우면서 먹고 있던 중 이사님은 물었다.
"승희 씨는 올해 계획이 어떻게 돼요?"
"아.. 저는 올해 유럽여행을 가려고요. 유럽여행 가서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제가 뭘 잘하는지 생각도 정리하고 오려고요."
"유럽여행 좋죠. 근데 나도 유럽여행 가봤는데, 노느라고 생각보다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고. (웃음) 그러지 말고 우아한형제들에서 같이 일해볼래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회사였고, 일해보고 싶은 회사였지만 막상 이사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머리 속이 복잡했다. '당장 서울에서 살 집이 없는데 어떡하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어쩌지? 그리고 이미 큰 회사에서 (난 그 당시 우아한형제들이 엄청 큰 회사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사님 제가 (이미 큰) 배달의민족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웃음) 지금 이 돼지갈비집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배달의민족'에 대해서 물어보면 얼마나 알 것 같아요? 열명 중에 한 명 알려나... 이 좋은 서비스를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요. 앞으로 배달의민족 광고도 시작할 거고 적극적으로 마케팅도 할 생각이에요. 승희 씨가 들어와서 우리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요."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이 한마디가 너무 설레었고 그렇게 난 우아한형제들에 들어가게 되었다.
#2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갔던 첫 회의를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회의 때 이사님께서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영화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아는 음식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나마 식객...?) 내가 이렇게 영화를 안 보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음식 영화가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른 분들이 말하는 영화들도 다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으니. (@#$%^&블라블라....)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음식 영화에서 페스티벌로 넘어갔다. 배달의민족의 타깃인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이야기를 하다가 페스티벌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무슨 페스티벌을 이야기하는지 어리둥절했다. '대학교 축제 이야기하는 건가?' 서울에 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그 흔한 페스티벌들이 그때 당시 나에겐 처음 듣는 페스티벌들이었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록 페스티벌 등등...'
마케팅 멤버들 모두 페스티벌 갔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 아쉽게도 난 공감할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들어갔던 첫 회의에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그랜드 민족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왔었고 그 패러디 아이디어는 실제로 그 해 가을에 실현이 되었다. 그 페스티벌을 주도한 대장은 페스티벌을 정말 사랑하고 많은 페스티벌을 경험 해 본 마케터였다. 그 마케터가 페스티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페스티벌에 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준비할 수 있었고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랜드 민족 페스티벌을 준비할 수 있었다.
마케터는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음식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페스티벌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 때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난 우아한형제들에 들어오기 전, 마케팅 교육을 듣고 마케팅 서적을 열심히 읽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고의 마케팅 교육은 바로 나의 '경험'들이었다는 그 날 깨달았다.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많이 쌓일수록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일을 할 때 어떤 반응과 공감이 돌아오는지 상상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케터에겐 정말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