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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an 18. 2018

찌질함의 극치

"이사님, 캠페인을 기획할 때 쓸고퀄(쓸데없이 고 퀄리티)을 지향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쓸고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막연한 질문이었다.

막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사님께 여쭤봤다. 계속 그렇게 계속- 묻고 또 물으면 내 안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1

 작년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연애든 일이든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 계속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스러워하던 나였다. 어떤 것에도 의연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허우적대기만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쿨하고 멋지게 살고 싶은데 늘 어렵다.


감정적으로 복잡할 땐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그 마음을 풀어나간다. 영화나 음악에 푹 빠져들어서 아무 생각 없는 무중력 상태가 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위로받기도 한다. 참 웃기다. 사람들과 만날 때보다 이런 콘텐츠(단순히 '콘텐츠'라는 단어로 가두긴 싫지만)에 위로받는 다니.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인가. 무엇에 공감하는 것인가.



#2

지난주 송원영 감독님과의 대화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풀었다.

이별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진짜 디테일을 살려요.
집착하고 찐따같이 굴지만 그런 친구들이 승부수를 띄우거든요.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멋없고 찌질하고 비참한 부분에서 나와요. 그 부분에서 모두가 공감합니다.

단, 소수만이 그 표현을 진정성 있게 할 수 있습니다.
- Space Oddity 스페이스 오디티 '송원영 감독과의 대화' 中에서

내가 공감했던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들의 대부분은 만드는 사람들, 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송원영 감독님도 그랬고 윤종신도 그랬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으니까.


곽진언, 고스란히 MV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소품, 가사, 스토리들이 존재한다. 김범수는 '보고싶다' 녹음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 행복한 연애를 해왔기 때문에 가사가 와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애절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자 친구와 일부러 헤어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있다.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아파본 사람만이 함께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고통스러워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는 무척 공감한다. 고통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람은 나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고 귀 기울여 줄 수 없듯이.




개인적인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들에서 위로받는다.

뮤직비디오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버스에서 순간 넘어질뻔한 여자 주인공의 흔들림에서 '복잡한 감정'을 공감한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감정을 겪어본 사람만이 쓸모없어 보이지만 절대 쓸데없지 않은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승희님은 어떤 마케터가 되고 싶으세요?"


그러니까 저는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도 쓸데없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결국 그런 사람만이 쓸고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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