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Aug 01. 2018

나는 오늘 면접을 봤다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승희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승희라고 합니다. (제 나이는... 아차차...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말자..) 저는 병원에서 4년 온라인 마케팅을 했고요, 5년 정도 배달의민족에서 마케팅을 했습니다."



이 멋대가리 없는 자기소개는 내가 오늘 면접 때 말한 자기소개였다. 와, 새삼 나에게 놀랐다. 1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자기소개라니, 나의 이 꾸준함은 상 줘야 한다.


5년 만에 보게 된 면접이었다. 면접관들은 누구였냐면, 함께 일하기도 하고 매일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마케팅실 멤버들.



 

사실 면접관 교육이 있었다. 면접자만큼, 면접관의 태도와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교육을 해주는 것이었다. 아직 나는 면접관으로서 면접을 볼 일이 많이 없긴 하지만, 언젠가 면접관으로 앉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교육을 받아두기로 했다. 예상외로 면접관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내 손은 쉬지 않고 메모를 하느라 바빴다.


면접관 교육 마지막 시간.

배운 것을 토대로 모의 면접을 해보기로 했다. 누가 면접자 역할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저 면접자 하고 싶어요!"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었다. 누가 할지 상의할 틈도 없이 내가 자원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손이 이끄는 대로 놔두었을 뿐.


하지만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은 금방 깨닫게 되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조여 오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 내가 왜 본다고 했을까.',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유나 님, 혜진 님이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면접자 역할을 한다고 했을까!’




퍼포먼스 마케팅실의 면접 롤플레잉이 먼저 시작되었다. 인정 책임님이 면접 자였고 브랜딩실 멤버들이 면접관이었다. 내가 면접관 역할을 먼저 하는 것이었는데 집중이 하나도 안되었다. 곧 있을 나의 면접 때문에...

인정님은 면접자 역할이었지만 여유롭게 면접을 보셨고 오히려 끝나고 면접관들의 아쉬웠던 점들을 피드백을 주셨었다. 나는 면접관으로써 역할을 충분히 했어야했는데 온통 내 머릿속엔 다음에 있을 내 면접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말 신기했다. 이미 다니고 있는 회사고 다 아는 얼굴들이었고, 이 역할극은 짧게 해보는 연기일 뿐인데 나는 이미 면접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지원자의 마음이 되어있었으니.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나의 면접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질문,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어떤 면접이든 자기소개를 가장 먼저 시켜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으~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미 면접관들이 이력서로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식상하게 한번 더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이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생각도 안 났지만...) 특이하게 했다가 더 맥락을 잃고 점수를 깎이고 싶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게 잘못되어서일까. 뭐든 대.실.패


자기소개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과제로 남을듯하다. 어쩐담 처음부터 막혀서.

(자기소개 잘 하시는 분 나와주세요.)



두 번째 질문, 내가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성과를 낸 마케팅 캠페인은 무엇이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역할극에 정해진 질문)

 나는 배달의민족이 진행했던 수많은 캠페인 중에서 2014년에 진행했던 TVCF캠페인을 이야기했다. 왜 그 순간 그 캠페인이 떠올랐을까. 수치도 전혀 기억도 안 나고, 그때 나의 역할은 아주 미비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면접관들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4년 전 캠페인이다. 내가 평소에 캠페인에 대한 정리를 얼마나 안 해놨었는지 알 수 있었다. 캠페인의 전체적인 결과 정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이끌었는지 자주 정리해두어야겠다.


또 하나 피드백을 받은 것은 내가 면접에서 대답할 때 강연하듯이 말한다는 점이었다. 배달의민족 강연을 할 때면 늘 우리 팀이 함께하여 이룬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면접에서만큼은 팀의 전체적인 실행력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만든 공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역할에 대하여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면접관들에게 그 점을 잘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질문,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세요.

 가장 어려웠다. 나에게 되려 돌아오는 질문이라니. 김봉진 대표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면접자가 질문하는 것을 보면 회사에서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다고. 그래서 첫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 팀에서 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요?'의 질문은 피하고 싶었다. 분명히 입사를 하게 되면 회사에서 주는 역할들이 있지만 나머지 50%의 역할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생각한 나의 첫 질문은

"오늘 저의 면접은 어땠나요?"


면접관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 질문도 망한 것 같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들이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면 나 오늘 울었을 듯...


오늘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구체적으로 질문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을 압박하는 면접은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면접자들이 관념적인 대답을 많이 하고, 실제로 본인이 한 경험을 자기도 모르게 더 나은 방향으로 미화시켜서 말하기도 하기 때문에 면접관들이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으면 그 짧은 시간 내에 면접자에 대해 더 알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질문했을 때 압박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침착하게 이야기해보는 연습을 하자. 나 스스로가 구체적으로 계속 질문하고 답해보자.



예전에 한명수 이사님께서 강연 때 말씀하셨다. 미래를 보여주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있고 과거를 보여주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있다고. 나의 면접은 어땠을까. 과거에 머물렀을까?



암튼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 자기소개를 누군가에게 해보자. 나름 다양하게 나를 소개해보자. 표현해보자. 표현력을 길러보자.

2) 내가 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를 해보자. 팀원들과 함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한 것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자. 아주 구체적으로.

3) 내가 회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생각이 정리되어있다면 나의 첫 질문이 달라질 것이다.

 


5년 만에 본 면접은 짜릿하고 새로웠다. 자칫 잘못하면 오늘의 롤플레잉이 나에게 면접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부드럽게 이끌어준 우리 면접관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면접이 또 오게 될지 모른다. 적어도 이번이 마지막은 절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분명히 안 것은 오늘 내가 번쩍 손을 들었던 것처럼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번쩍 손을 들 것이다.

수많은 면접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객관식 삶과 주관식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