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꾼다. 그런 삶을 만들 수 있도록 당신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싶다. 당신에게 위로를 주고, 당신에게 바람을 넣어주고 싶다.
-식스먼스오픈
내 안에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 시기가 또 왔나 보다. 가게의 메뉴판을 봐도 다 나에게 위로하는 말처럼 들리니.
어렸을 땐 몰랐다. 나이 서른 하나가 되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줄은. 그래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진로 고민에 엄청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어차피 커서도 그 고민은 하게 될 거거든. 하하.”
이번 주 토요일이면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열린다. 시험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다양한 질문을 했다. 어제 누군가 물었다.
“시험은 객관식인가요?”
“네. 시험은 객관식만 있어요. 모르면 찍으면 돼요.”
나의 대답에 질문을 한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긴, 주관식보다는 객관식이, 시험을 보는 사람 입장에선 덜 부담스럽긴 하지.’
객관식은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보기 안에 정답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도 보기 안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답을 모를 때면, 내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정답을 고르면 된다. 무책임해 보일 수 있지만 객관식 안에선 안전하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처럼 내 인생이 객관식 같았으면 좋겠다. 보기 안에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나열되어있고 그 안에서 답을 찾고, 번호를 고르고 OMR카드에 옮긴 뒤 다 풀었다며 엎드려있을 수 있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뭐, 가끔씩 수정테이프로 답을 수정 한다한들 괜찮잖아.
하지만 보기 좋게도 나의 인생은 늘 주관식이었다. 아, 하늘의 장난이신가요, 제 주변의 몇몇은 부모님에 의해 객관식 같은 삶을 살기도 하던데 왜 저에겐 보기 따윈 없나요!!!
생각해보니 한번 있었다. 고3 때 수능시험이 끝난 뒤 아빠가 치기공과 돈 잘 번다고 슬며시 보기를 주셨었다. 그걸 덥석 물었다가 다니는 내내 후회했지만.
아무튼 나의 인생은 늘 주관식처럼 정해진 답은 없었고 혼자 고민하고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오래 걸렸으며, 어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서술해보시오.
( )
괄호를 보면 아득해진다. 어렵게 답을 써 내려가고,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살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시험을 볼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면 그 괄호 앞에서 난 또 어떤 정답을 써야 할지 고민한다. 내가 살면서 써 내려갔던 나의 답안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만류, 불안감을 심어줬었다. 나의 답들은 늘 예측할 수 없고 불완전했으니까. 그럴 때면 청개구리 심보처럼 더 밀어붙인다.
지금의 나는 아주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직장, 좋아하는 직업, 좋은 사람들. 생각해보면 현재의 내 주변에는 좋은 것들이 참 많다. 지난번 주관식에 써 내려갔던 나의 답이, 나를 행복하고 안전한 삶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또 질문지가 와있다는 것은 지난번 답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도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니.
다시 한번 답을 써 내려가 봐야겠다.
하지만 지난번 답에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있다.
안전한 곳엔 재미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