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Aug 17. 2018

사랑에 빠지는 순간

 지난 주말, 유나 님이 말했다.

"나는 예전에는 사랑은 노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거든? 근데 요즘엔 사랑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사랑을 하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노력하면 안 되는 것 같아. 그때만큼은."


사진, 글쓰기, 여행,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새로운 팀원을 맞이하는 일, 누군가와의 연애 등등.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떤 것이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단순한 호기심으로,

기분 좋은 첫 만남으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결정됐었다.



 

 나는 빈티지 컵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2년 동안 각종 컵들을 모으고 있다. 처음엔 빈티지 컵만 모았는데 현재는 머그컵, 유리컵 등 다양한 컵을 모아서 300개 정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컵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2년 전 익선동에 있는 가맥집을 다녀온 후부터였다. 익선동의 오래된 느낌을 좋아해서 그 거리에 생긴 한 가맥집을 간 적이 있다. 그곳의 옛날 슈퍼 느낌이 좋아서 한참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맥주잔으로 나온 컵이 너무 평범하고 지저분해서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전체적인 공간이나 분위기, 음악, 화장실까지 다 좋았는데 컵 하나로 이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뒤부터 컵에 대한 애착이 시작된 것 같다. 내가 어떤 공간에 가면 항상 감동받고 좋아했던 포인트는 단연 컵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크게 띄지 않아 보이는 곳들까지 신경 쓰는 느낌을 줘서일까?

아니면 컵에 주인의 취향이 닿아있는 것 같아서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이유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가 컵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컵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아주 우연히 간 가맥집에서 '별로였던 맥주잔'으로부터 시작됐듯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컵을 사랑하게 되는 그 순간을 노력하려고 했다면 지금처럼 300개 이상 모으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그 일과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 일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인이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 하고 있는 일과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괴롭고 아까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 사랑에 빠지기는 쉽진 않지만...)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다양한 순간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다양한 순간들을 버티는 것이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참 어렵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노력해서는 안되는 것 같기두.


가슴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은 때론 무척 쉽다가도, 때론 엄청 어렵다. 그것이 사람으로 향할 때는 가장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한 가지 이유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람이든, 일이든, 어떤 것이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