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에서 불안정으로 나아가기
막 학교에 들어온 초임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임.상.장.학
쉽게 말하면 수업을 다른 선생님과 관리자에게 공개하는 일이다. 수업할 차시를 정해서 지도안을 짠 뒤 멘토 선배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다. 그리고 정해진 날짜에 수업을 공개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일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임상장학을 좋아했다. 부담인 것과는 별개로 수업 준비와 수업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내 수업을 누군가 본다는 것이 좋았다. 내향형 인간이지만 수업 분야, 교육 분야 한정 관종이었던 것 같다.(사실 지금도) 여럿이 모여 내가 만든 수업, 내가 한 수업을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내 수업을 보러 오는 분들에게 최상의 수업을 보여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수업은 아이들과 함께 '분업'을 실제로 해 본 활동(첫 임상장학 수업이라서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듯 하다.), 음악 수업을 더 잘하고 싶어서 공부했던 유리드믹스를 적용했던 활동이다.
분업 수업의 경우 분업팀이 개별작업팀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반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기에 조마조마하며 아이들의 활동을 지켜봤다. 지금이라면 반대 결과가 나왔을 때 '왜 반대 결과가 나왔을까?'하며 또 다른 이야기 장으로 만들어 나갈텐데, 그 때는 교육경력 1년차일 때인지라 '제발 나와야 하는 결과대로 나와라!' 간절히 바랐다.(다행히도 분업팀이 훨씬 더 많은 양을 만들었다.)
유리드믹스는 음악 수업을 더 내실있게 만들고 싶어서 그 시절 꽤 비싼 교육비를 주고 배웠다. 교실에 피아노가 있으면 더 자율적인 음악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건반도 구입했다. 이렇게까지 투자했으니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수업에 열심히 적용했고, 이를 임상장학 때 오픈했다.
수업이 좋았다. 하루종일 수업만 생각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수업에 몰입할 수 있을까?', '최근 교육 관련 연구의 방향성은 어떠한가?' 생각하며 수업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일상 수업 준비에도 최선을 다했다. 교사일지에는 수업 아이디어, 수업 플랜과 같은 수업에 대한 이야기 등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하면 즐겁고 행복하게 교직 생활을 정년까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