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뱉는 사람에서 글을 쌓는 사람으로
요즘 취향이 변하고 있다. 전에는 새롭고 반짝이는 게 좋았다면, 요즘은 노련하게 잘 만들어진 것들이 좋다. 진부함에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서투름에 조금 더 엄격해진다.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보다 성실함이 엿보이는 작품이 좋다. 평범한 꾸준함이 비범함보다 중요하다는 말에도 쉬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취향에 따라 내 글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정교해지고 조금 더 진부해졌다.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됐고, 날카로움이 다소 줄었다. 내가 요즘 독자가 명확한 글을 많이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점차 ‘쓰고 싶은 글’에서 ‘읽기 편한 글’로 글의 지향을 옮겨가고 있다. 쓰고 싶은 문장과 글에 어울리는 문장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톡톡 튀는 글보다 잘 흐르는 글을 쓰게 된다.
어쩌면 대부분의 독자는 내 글에 나만큼의 애정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인 걸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글의 문장문장을 곱씹어 의미를 이해할 만큼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다. 첫 문단을 읽다가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스크롤을 내릴 사람들, 익숙한 글의 흐름에 기대어 슥슥 글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내 주된 독자다.
그러다보니 소심해진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이해가 가능한, 익숙한 문법들과 기호, 상징들이 편해진다. 보편의 언어와 많이 떨어져 있는 내 언어들은 자꾸 일기장에나 뭉쳐놓는다. 나중에 내가 더 똑똑해지면 그 언어들을 어떻게 보편의 언어와 섞으면 좋을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 길이 보이지 않고, 나는 강박증적으로 내 언어들을 글에서 지워낸다. 그러다 보면 글은 평범해진다.
‘어디서 본 글 같다’는 평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나름대로 겪어야 할 단계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될 것이고, 콘텐츠는 대중과 닿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과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타협’이나 ‘변질’이 아니라 성장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내 언어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 언어를 보편 언어 사이에 잘 녹일 수 있을 때까지 잘 보관하는 일이다. ‘내 것’들을 일기장 안에 잘 꿍쳐둬야지. 그래서 언젠가는 보편적이면서도 반짝이는 글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