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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Aug 27. 2022

07 번역은 훌륭한 부업?

   

오래전 나와 같은 출판사의 일을 하던 남자 번역가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번역 일을 그만두고 회사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나름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번역가였는데, 일을 그만두면서 번역은 참 멋진 일이지만 ‘훌륭한 부업’ 일뿐이라는 말을 남겼단다.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지만 번역시장의 여건은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가 그만두었던 일을,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엄밀히 말하면 내가 가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번역은 참 멋진 일이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수입이 너무 불규칙하다. 일 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페이지씩 성실하게 번역해도 수입이 들쭉날쭉한다. 주말도 없이  일해서 마감에 맞추어 칼 같이 원고를 넘겨도 그 책이 언제 출간될지는 하늘만 안다. ‘곧’ 출간된다던 책이 이삼 년 뒤에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출간이 되어야만 번역료를 지급하는 출판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번역자에겐 큰 부담이 된다. 그렇다면 왜 마감을 맞추어야 하냐고? 한 작품을 끝내야만 다음 작품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가며 마감을 맞추는 건 출판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프리랜서의 불규칙한 수입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금융권에서도 너무 불리하다. 나의 쌍둥이 자매 H는 통역 프리랜서 시절 연간 수입이 나의 열 배가 넘었는데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은행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했다. 하물며 수입이 크지 않은 프리랜서는 어떻겠는가. 좀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프리랜서 번역가는 “몇 달 동안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마감에 쫓기며 일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한 직업인 것이다.       

십 년 이십 년 경력이 쌓여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약간 맥 빠지는 일이다. 회사생활을 25년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임원이 되지 않을까. 물론 프리랜서 번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된 출퇴근 생활을 견디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 옳겠지만, 집에서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번역 일을 하는 것도 뭐하나 면제되는 것 없는 고된 삶인 것은 마찬가지다. 무임금 가사노동과 저임금의 번역의 결합이라니. 오직 셈 흐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번역에 미쳐 살았던 나에게도 힘겨운 시간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아이를 내가 키우고, 살림도 직접 하면서, 좋아하는 일도 해보겠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도 같다. 일 공간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아서 아침에 눈떠 밤에 잠들 때까지, 야무지게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기분으로 뛰고 저리 뛰던 시절에는 매달 월급이 나오고, 자잘한 집안일은 조금이나마 면제되고, 퇴근하면 뇌의 한쪽 스위치를 끄고 쉴 수 있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물론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출근할 필요 없고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일하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좋은 돈벌이를 원한다면, 번역은 결코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번역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단지 나에게 일이 있다고, 나도 뭔가 하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또 즐겼다.      


지지고 볶는 일상 속에서 번역은 나에게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물론 일상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반면, 번역이 주는 기쁨은 너무도 찰나적이고 희귀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의 어떤 기쁨인들 그렇지 않은가?

찰나적이고 희귀한 기쁨들은 주로 이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컴퓨터 앞에 앉을 때, 며칠 동안 끙끙 앓던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 마법의 한 단어로 스르르 풀릴 때, 엄마가 일에 몰두해 있을 때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이들이 살짝 방문을 닫아줄 때, 나의 번역이 좋았다는 독자 서평을 읽을 때.     


모두에게 그럴 순 없겠지만, 나에게 번역은 분명히 훌륭한 본업이었다. 희귀한 찰나적 기쁨들이 지난한 일상의 나날들 속에서 나를 구원했다. 한 순간의 쨍한 햇빛이 수많은 흐린 날들을 지워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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