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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Aug 28. 2022

08  끝까지 간다는 것


    

새로운 책의 첫 장을 펼쳐 첫 줄을 번역하는 순간의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몇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 소중한 순간을 위해 나는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읽는 것과 번역하는 건 전혀 얘기가 다르다. 번역에 앞서 작품을 대충 읽어보았더라도 원서의 한 줄이 모니터의 한 줄로 환생하는 그 순간, 비로소 이번 작업에 대한 ‘느낌’이라는 게 온다. 그저 ‘읽는’ 소설이라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내던지고 다른 책을 집어 들 수 있겠지만, 번역하는 책은 그럴 수가 없다. 번역은 첫 느낌과 상관없이 무조건 ‘끝까지’ 간다.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이나 평가가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반에는 문장이 좀 답답하다 싶어도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기는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고, 강렬하고 인상적인 첫 문장에 비해 뒤로 갈수록 짜릿한 ‘한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끝내 내가 기다렸던 ‘한 방’이 없었는데도 막상 번역을 마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도 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예전처럼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 어쩌다 보니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번역 일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게 되었다. 성공은 그 바닥에서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버티기’에 성공했다면 성공한 나도 이 바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      


지난 25년 동안 내가 번역한 소설이 출간되지 않은 경우는 두 번 있었고, 번역료를 받지 못한 경우는 한 번 있었다. 내 번역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받은 적도 두 번 있었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번역 일을 했던 원로 번역가도 때로는 이런 공격을 받는다는 담당 편집자의 얘기를 듣고 크게 위로받으면서 번역 선배의 고통으로 위로받는 내가 참 한심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비판보다 더 뼈아픈 고통은 오래전에 내가 했던 번역을 다시 대면할 때 찾아왔다. 절판된 번역서를 10년 만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하게 되었는데, 10년 전 나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면서,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 달라고 했다. 간단한 수정 작업을 예상하고 원고를 받았는데, 번역이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나쁜 쪽으로. 이게 정말 내가 한 번역인가 싶을 정도로 오독과 오역이 많았고 건질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다른 사람의 번역이었다면 내가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결국 나는 기존 원고를 수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몇 달에 걸쳐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다시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땐 번역에 대해 참 할 말이 많아서 아무도 묻지 않는데 나의 번역론을 설파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 보니 오히려 말을 아끼게 된다. 긴 세월 이 일을 하고 깨닫게 된 것이 번역을 ‘안다’라기보다는 ‘모른다’는 것에 가깝다는 건 아이러니다. 작가의 의도와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 가독성 있게 번역해서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은 번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 번역 현장에서 왜 이 번역이 저 번역보다 더 나은지는 설득의 영역이 아니다. 확연히 좋게 느껴지는 번역과 확연이 나쁘게 느껴지는 번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번역은 상당 부분 취향의 문제다. 작가의 의도, 직역과 오역과 의역에 대한 정의 또한 완벽하게 주관의 영역이고 그것들의 정의는 번역가와 편집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결혼 생활도, 아이 키우는 일도, 번역 일도, 길게 겪어보니 처음 생각과는 참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마저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었다면, 나는 ‘안다고 생각하는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조니 미첼의 유명한 곡 <Both Sides Now>의 노랫말을 인용하자면, 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아이스크림 성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태양을 가리고 눈비를 뿌리는 심술꾸러기이었다. 사랑이 한 편의 동화인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저 지나가는 한 차례 쇼일 뿐이었다. 살아보니 인생은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고, 승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되는 것이더라. 이제야 비로소 그 양면(both sides)을 보게 되었다. 양면을 보았는데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구름도, 사랑도, 인생도, 번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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