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음을 체감하는 나날들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연말이 다가오는 요즘, 본격적으로 디지털 노마드스러운 수익을 얻기 시작했던 한 해를 돌아보니 나쁘지 않은 소득이다. 이러저러 기복은 있었지만 메인 플랫폼에 집중한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소득을 가져다주지 않는 브런치 공간에는 자연스럽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충격적인 일을 겪은 이후로 온라인에 나의 삶을 공개하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여전히 조심스럽고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브런치를 열었는데, 이제는 비공개처리한 나의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그때보다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 공간에서 조금씩 다시 나의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찾아왔다.
프랑스에 온 지 대략 3주가 지났다.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아프고 골골대는 몸은 프랑스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흐리고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는 요즘, 햇빛이 참 귀하다. 우울한 날씨는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프랑스 병원 응급실에도 하루 다녀왔다. 한국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느린 프랑스 응급실 경험은 쉽지 않았다. 접수 후 2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의사를 볼 수 없었다. 심한 통증으로 흐느끼기 시작한 즈음에야 나를 딱히 여긴 간호사가 "다음 차례에 넣어주었다"라고 말해주었다. 만약 내가 울지 않았다면 몇 시간을 대기했을지 잘 모르겠다.
한국이었다면 진통제부터 줬을 텐데, 이곳에서 진통제를 맞을 때까지 거의 5시간을 견뎌야 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일반의를 보고, 인턴 대학생을 보고, 피검사와 온갖 검사를 마친 후에야 진통제를 맞혀주었다. 그런데 바늘을 잘못 꽂아서 너무 아파 그토록 원했던 진통제는 5분도 채 맞지 못한 채 다시 제거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안이 아닌 이상 프랑스 응급실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겪어보니 참 너무하다 싶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 외에도 일주일째 나을 기미가 없는 목감기와 인생 처음으로 경험해 본 편두통 등등 자잘하게 골골거리고 있다. 진정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만 나이로 노산에 접어들었고 조금 뒤면 갱년기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더 이상 젊지 않고 늙어갈 날들만 남았음에 소름이 돋는다.
늙어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시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에 젖어들게 된다.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계획했던 삶의 플랜은 무산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소득을 버는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때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열정을 쏟게 했던 삶의 목표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되어 전혀 나를 들뜨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목표도 없이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또다시 흘려보내고 있다. 그것이 한국이든, 프랑스든, 장소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정말로 나이가 드는 것일까? 삶의 목표와 열정과 같은 단어들이 힘들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더더욱 삶을 살아가야 하는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니,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골골거리는 일상 속에서 조금의 열정을 찾아 떠나곤 한다. 어쨌든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전시회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반고흐의 마지막 생애 작품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도 특별전이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살바도르 달리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모두 하나하나 방문해 볼 예정이다.
무엇보다 현재 가장 핫한 전시회는 바로 마크 로스코 특별전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 기가 막히게 전시를 해 내는 파리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워낙 핫해서 유럽 전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그래서 골골거리는 와중에 마크 로스코전을 다녀왔다. 모던 아트에서 참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는데, 직접 가 보니 작품들을 배치한 센스가 정말 대단했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루이비통 미술관은 파리 외곽 부촌에 위치하고 있다. 가는 길에도 브랜드값 유명한 비싼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전시회장 내부에는 젊은이들만큼이나 지긋이 머리가 흰 노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가난하고, 노인들은 대체로 부유하다.
지금의 남편을 파리에서 재회한 이후로 9년 만에 관광객이 된 것 마냥 바토무슈를 탔다. 한여름의 파리에 다시 만났던 우리는 어느새 결혼한 지 7년 차가 되었다.
겨울의 바토무슈는 많이 추웠다. 하지만 바토무슈 말미의 에펠탑은 여전히 아름답고 반짝이고 로맨틱했다. 파리는 참으로 더럽고 참으로 예쁜 곳이다. 예쁘다와 더럽다는 단어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살기엔 한없이 불편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낭만 하나로 모든 것이 상쇄되는 이상한 도시. 걷기만 해도 내 옆의 배우자가 새삼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환상의 도시.
나는 프랑스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는 남편의 인간관계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지금도 여행객처럼 일 년에 한두 번씩 몇 개월 지내다가 돌아가는 것이 전부이다.
요즘 내 머릿속의 화두는 '이방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지만 나처럼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한국에도, 프랑스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나의 이방인적 삶에 대해 고찰하곤 한다. 무엇이 행복한 길일까?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외롭다. 삶의 목표가 다시 사라진 지금은 어디에서조차 열정을 찾을 수가 없다. 이방인의 삶의 이정표를 누군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삶의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면 여행뿐이다. 이번주에는 런던으로 짧은 축구여행을 떠나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아 스트라스부르에 갈 예정이다. 내년 1월에는 푸꾸옥, 5월에는 방콕이나 호이안, 내 생일에는 푸켓 휴양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이 지루한 삶을 견디기가 매우 어렵다. 번 만큼 여행으로 쏟아버리는 삶이다. 여러모로 침잠하며 살았던 22년과 23년이 끝나간다. 24년이 오기 전에는 다시 삶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열정이나 목표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