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게 되는 꿈을 음악을 따라가다 이루어졌다.
나는 음악치료공부를 내 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에 시작하였다.
나는 도박과 여자, 그리고 인터넷 성중독에 걸린 남편과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살길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한국인 음악치료교수인 분의 글을 읽고 이것이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교수님께 이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학교는 뉴욕에 있는 롱아이랜드에 위치하고 있기에 집에서도 통학이 가능한 것을 알고 발 빠르게 다음학기 오디션을 준비하였다.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교수들과 인터뷰.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하였고 작곡을 전공하며 늘 피아노 반주자로 연주자로 지내왔기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기타는 첨부터 시작해야 했다.
손가락에 굳은 삶이 베이고 아파서 도저히 연습을 못하겠는데도 오디션에 붙으려고 열심히 했고 인터뷰 과정까지 잘 통과가 되어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원의 많은 수업과정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많이 배우기 시작했고
내 안에 작은 변화들도 생기기 시작함을 느꼈다. 음악치료공부는 내가 음악치료사가 누군가를 도우기 위해 배우는 학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너무나 상처가 많아서 내 안이 너무 황폐하고 문들어져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나를 그들이 믿어 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상처 입은 상태로 계속 배우지만 나에게 가능성을 두지 못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을 도와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불완전한 나의 지금이 모습이 이혼녀라는 꼬리표나 좌절된 자아상이
더 이상 남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것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이혼한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이혼'이라는 것이 내 삶에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하였다.
왜냐하면 난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혼한 부부들을 봤지 주위에 이혼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설사 나에게 일아날까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도 일어날 때는
정말 암담했고 사람들의 정죄의 눈길에 나 자신을 가둬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차츰차츰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회복하려고 공부를 통해 노력하던 중 GMI라는
수업을 받게 되었다. GIM는 Guided Imagery and Music Therapy의 약자이며 1970년대에 헬렌 보니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음악치료는 음악이 주체가 되어서 상담자에게 깊은 정서적 심리적 치유를 유도한다. 신중하게 선택된 클래식 음악과 치료자의 유도와 안내로 내면의 세계와 생각을 탐험하고 감정을 탐구하고 정서적 치유 자기 발견 개인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깊은 내면을 탐구하는 음악치료의 한 형태이다.
이렇게 문자적으로 배우면서 흥미가 생기긴 하였지만 내게 직접 실습하기 전까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였다. 우리는 교수님이 안내하였듯이 작은 베개와 배를 덮은 작은 이불을 가져와서 교실 바닥에 누웠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바닥에 폭신한 것을 깔고 배에 이불을 덮고 누우니 편안했다. 눈을 감았다. 클래식음악 아주 평화로운 그리그의 아침이었나 그 음악을 들으면서 치료사의 가이드에 귀를 기울였다. 치료사가 이렇게 말을 한다. "가장 가고 싶은 장소를 생각하시고 그곳에 걸어가 보세요. 어릴 때 가장 좋았던 장소 그리운 장소에 가보세요" 나는 가이드를 따라 음악을 따라 걸어갔고 아름다운 색색깔의 꽃들과 나무들을 보았고 향기로운 냄새도 맡았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었다. 너무나도 신기하면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음악이 특히 현악기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그리며 경쾌한 템포에 맞게 움직일 때는
신선한 바람이 꽃들을 나무들을 자연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고 관악기의 높은 스타카토는 새들이 아이들이 즐거운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음악의 여러 요소들과 형태들이 나의 시각적인 영상으로 상상을 자극하며 매치가 되었고 내가 걸어가는 모든 영상 속에서 그 맞춤을 맞추어 나갔다. 너무나 신비로웠고 다음 것이 기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음악은 밝은 분위기에서 약간 느리고 어두운 느낌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나에게 질문은 무엇이 보이냐였다. 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갔고 굉장히 처참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울고 있었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였다.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오지 않고 어느 누구도 오고 싶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엄마가 생각이 났다.
무릎으로 너무너무 고생하고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울음이 터져 버렸다.
음악은 너무나도 슬프게 흘러갔고 꾹 참고 있던 내면의 슬픔의 성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물은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렇게 우는 나를 얼마동안 울게 놔두었고 다시 나를 가이드하기 시작했다. 아픈 엄마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론 나는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난 후에 음악은 다시 느리지만 서정적이면서도 희망이 닮긴 하지만 경쾌하지 않고 어느 정도 무게와 현악기의 안정적인 선율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 음악과 동시에 나의 내면의 영상도 아주 깊은 바다속 영상으로 바뀌었다.
가이드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 나는 엄마가 가장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놀라웠던 거는 내 상상 속에 엄마는 다리가 아닌 인어다리 물고기다리를 하고 너무나 아름답게 수영을 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휩싸였다.
그렇다 나도 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나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 진 일이라는 것.
한국에 계신 엄마는 고통가운데 아픔을 계속 호소하고 계시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의 회복된 모습,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이 나에게는 소망이고 희망이었다.
그저 가녀린 거친 구름 속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온 듯한 갈망이었다.
엄마는 몇 년 뒤에 양쪽 무릎을 수술하시고 너무나도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신다.
음악을 통한 내면의 여행은 특별나다.
음악이 주체가 되어 내 감정과 생각을 신비로운 곳으로,
상상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로 데려갔다 또한 음악의 힘이 어려움에 있는 나를 보고
위로하게 하며 그 뿐만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워 새로운 희망 안에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