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애들 봐, 그럼!

by 가비

나름 평화롭게(?) 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8시가 되자, 일하러 나가야 하는 남편이 실내복으로 바꿔 입고 둘째 아이 밥을 차려주고 있는 나를 보고 하는 말.



"그 복장이 부럽다"



순간 내 안에 드는 마음이



'부럽다?? 복장만 편하지 이 시간에 따로 밥을 차리고 할 일은 산더미라 언제 잘지도 모르겠는 상황인데 부럽다고???'



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 나의 입술이 주인허락 없이 반사적으로 열렸다.



"그래? 그럼 바꾸자. 나가서 일하는 게 차라리 낫지.

"......................."



"집에서 애들 봐, 그럼!"





입에서 이런 말이 던져지자마자 아니, 던져지는 동시에 급속도로 밀려오는 후회. 부끄러움. 미안함. 하지만 깊숙한 곳에는 서운함이 잔뜩....

아이들도 옆에 있는데 이 상황을 얼른 수습하고 싶었으나 입은 떨어지지 않고 남편도 나도 이미 빈정은 상했고..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말리지 않고 이성을 금방 차린 남편은 순식간에 짧고 굵게 일어난 이 일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잘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한편, 남편의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어떤 대꾸도 나오지 않고.. 나도 나 스스로가 답답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9년째 늘 남편이 부탁하던 것 하나가 "미안하다는 말 하기"였는데 이번에도 이 말이 선뜻 나오지가 않았다. 미안하지 않아도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 해주자라고 했던 남편 덕에 요즘엔 미안함이 전혀 없어도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그래서 아이들도 있으니 다시금 마음을 먹고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이 마무리되었고 일하러 가는 남편을 아이들과 여느 때처럼 웃으며 인사하고 마중을 할 수 있었다.


참 못났지... 미안하다는 말이 이리도 어려운 건 뭘까??


신기한 것은,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을 먼저 하면 정말 미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남편은 고수인 것 같다. 감정적인 나보다 더 감정적일 때가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해주는 말에 지혜가 느껴지니 말이다. 남편 덕에 오늘도 나는 아내로서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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