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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쮸's 인디무비] 내가 여기 서 있어

‘바라보다’(감독 조민혁, 3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슬프고 비참할때는 언제일까? 그 사람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거나, 모양 빠지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한심한 흑역사만 만들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을 때다.


나의 시선은 온통 그를 향해 있는데, 나의 세상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의 이름 석자조차 정확히 모른다. 그 사람이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입었고, 기분은 어떠한지 나에겐 몹시 중요한데, 그 사람의 기억 속에는 나란 존재가 없다. 짝사랑은 그럴때 가장 슬프다.


‘바라보다’ 스틸컷


씨네허브단편영화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바라보다’(감독 조민혁, 3분) 속 남자 역시 그렇다. 아름다운 여배우인 그녀에게 ‘카메라맨’인 남자는 ‘카메라’ 그 자체일 뿐이다. 촬영장에서 조용히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 자신과 남자 배우의 연기를 담아내는 카메라….그저 무생물과 다름 없을 뿐, 그는 그녀에게 언제나 자신을 지켜봐주는 ‘남자’가 되지 못한다.


결국 그런 상황은 커다란 비참함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렌즈를 통해 그녀를 마음껏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그녀의 키스신 촬영일이 다가온 것.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카메라를 통해 사랑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입술을 맞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한 채.


카메라 렌즈 너머 그녀의 입술 위에 다른 남자의 입술이 포개질 때 관객의 마음은 덩달아 아파온다. 중요한 장면인 만큼 촬영장은 스태프의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고, 남자 역시 묵묵히 카메라에 그녀의 모습을 담아낸다. 하지만 관객의 귀에는 “내가 여기에 서 있어”,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어” 라는 남자의 절규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아픈, 그래서 더 애잔하고 존재감 있는 ‘짝사랑’ 영화다. 그 이후, 그는 어떻게 됐을까? 끝까지 속마음을 숨긴 채 카메라로만 남을 것인지, 카메라 밖에서 그녀에게 다가갈 것인지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영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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