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대하는 나의 자세
그러니까 우리 내일부터는 어깨를 펴고, 큰 소리로 웃고, 씩씩하게 걸으며 대인배처럼 한번 살아봅시다. 용기가 있어서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굴면서 용기 있어지는 거니까요.
-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한수희
나는 편협하다. 나의 취향인 드라마나 영화, 책만을 본다. 취향에 벗어나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나는 이야기에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두려워 몇 번이고 보던 드라마를 멈춘 적이 많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전개되면서 상처받을까 멈춘다. 동화가 잘 되는 사람이다. 허구이며 소설임에도 이야기는 내 삶에 가까이 다가선다. 양치를 하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방을 정리하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순간에 이야기 속 주인공을 걱정한다. 상상하고 걱정하며, 벗어나려 애를 쓴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긴 시간에 걸쳐 마무리를 짓는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아무렇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반복해서 보고, 좋아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이 있다. 아마도 찾아보면 더 많을 테지만, 당장 생각나는 작품은 [리틀포레스트] [비밀의 숲]이다. 작가는 이수연, 한수희 이 정도 되겠다. 리틀포레스트는 내 삶의 지향점이고, 비밀의 숲과 그 작가님은 동경하는 대상이고, 한수희 작가님은 나와 닮았다. 나는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궁금하다. 어떤 마음으로 주인공을 만들었는지, 그들의 실패와 상처에 마음이 쓰이진 않았는지.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결심한 이후로, 수많은 시놉시스를 적어보려 노력했으나 어느 하나 완성한 것이 없다. 블로그에 나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와 생각을 적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는데, 내가 쓴 시놉시스는 어쩐지 허술하고 재미가 없었다. 어디서 본 이야기 같고,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 같은,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지 그 목적이 뭔지 잊어버릴 만큼 형편없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것을 멈췄다. 나의 감정에 어떠한 동요도 주지 않는 가볍고 익숙한 시트콤을 무한 반복했다. 대사를 외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작가라는 고귀한 직업을 갖기엔 내가 너무 초라해서였을까. 그렇게 자주 마음 한편에 작가라는 꿈을 품은 체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시간이 많아서, 도서관이 집에서 10분 거리여서, 무언가 원했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본다. 역시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짜릿하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내 일기장을 펼치는 기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중히 여기며 꾸몄던 내 다이어리를 하나씩 펼쳐보며 이땐 이랬지 추억하며 지금은 어떤가 생각한다.
차를 마시며 책을 본다. 햇빛이 연하게 들어오는 창문 빛에 기대어 글자를 읽는다. 정해진 일이 없어 무료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줄 한 줄 글을 읽으며 오늘의 목적을 찾는다. 오늘의 목적이 이 책 하나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면, 행복해진다. 해가지고 밤이 되면 게을러진 나를 일으키려 책을 가까이 둔다. 어떻게 하지, 하다가 읽던 곳을 펼친다. 그렇게 또 책을 읽는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찻잔세트에 차를 내리고, 오토바이 소리와 옆집 강아지 울음소리를 배경 삼아 읽는다. 매일 찾아오는 이 밤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이 밤이 지나면 또 다른 아침이 찾아올 것이고, 나는 또 목적 없는 목적 있는 하루를 위해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엔 다르다. 이때만큼의 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게으른 블로거지만 글쓰기만큼은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느낌 받아서 쓰는 감정적인 글 말고 내가 느낄 수 있고,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글로 남았으면 좋겠다. 매번 실패하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결심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