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누군가에게 내 행복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열등감을 느낄까? 고등학교 시절, 스마트폰이 출시되어 친구들이 카카오스토리를 하는 동안, 핸드폰에 관심 없는 나는 카카오톡도 안 되는 햅틱팝을 들고 다녔다. 꽃보다 남자로 한창 인기 있었던 그 햅틱팝.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있는데 굳이 핸드폰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 되었고, 딱히 학교 이외의 시간에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엔 추리소설을 읽었고, 집에 가서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다. 누군가와의 소통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갔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할 수 있고, 버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었으며, 마음껏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편한 것을 고등학교 때는 왜 필요가 없었지?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아마도 핸드폰을 바꾸면 돈이 들어서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햅틱팝도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또 다른 핸드폰에 돈을 쓰는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죄의식처럼 느껴졌을까? 사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스마트폰도, 내가 살 수 있는 집도, 밖에 입고 나갈 옷, 먹고 싶은 것,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필요하다는 것이고, 사회인이 되었기에 그 모든 돈을 내가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난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가난했을까?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을까? 찢어지게 가난하다 보다는 형편이 어려웠다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18만 원짜리 수학학원을 보내주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엄마에게 EBS로 공부하면 된다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형편.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기에, 학원 못 가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학교 가서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었을까? 하는 불안함과, 그럼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안고 살았다. 국가장학금이 없었다면 아마 졸업이 더 늦어졌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겠지. 대학교에 가서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를 잘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늘 결핍과 열등감에 찌들어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인정해야 했다. 내 열등감을 자꾸 건드렸던 친구와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그때 느꼈다. 나는 남들이 아닌 스스로 나 자신을 무시하고 열등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내가 가졌던 우울은 나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것을. 응축된 우울앵두는 직장을 다니면서 터지고야 말았다. 말랑말랑하니 힘주거나 으스러뜨리지만 않으면 온전한 모양을 유지하는 앵두. 손안에 가지고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터트려 버리고 싶었던 그 우울 덩어리가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톡 하고 터져버렸다. 그렇게 2년 10개월,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나는 집에만 있고 아무것도 안 하는 히키코모리는 아니었다. 친구도 만나고 내 꿈을 이야기하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잘난 사람들 옆에서 위축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대단해지고 싶었다. 나를 우러러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꿈꾸는 꿈들을 과시하고 싶었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꿈이라도 있는 내가 당신들보다 낫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학생 때 꿈이라고 여겼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을 볼 때는 합격할 줄 알았다. 물론 준비기간에는 너무나도 불안했지만.
그렇게 내가 흥미가 생긴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실 대학병원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재미없고 지루한 일들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목을 턱 막히게 했다. 그렇게 하나씩, 무언가를 해내면서 나의 열등감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보는 유튜브와 인스타와 그 외의 SNS는 벗겨나간 열등감도 다시 돌아올 만큼 나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다. 현재는 퇴사하였으므로 수입이 없기에, 퇴근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또다시 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 열등감을 느낀다. 그렇게 쌓여만 가는 열등감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며 마음을 온전히 쓰다듬어도 다음날 눈을 뜨면 또다시 불안감과 불투명한 미래에 마음이 닫혀버리고 만다. 이렇게 살기 싫어서, 다르게 살고 싶어서 노력했던 내 과거는 바래고 미래는 뿌옇다. 나에게 현재는 없다.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갈 뿐이다.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과 끊임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나에게 내일은 또 어떤 절망감을 안겨줄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살아갈 뿐.
퇴사하고 나아졌던 우울증이 다시 찾아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나의 우울은 병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머릿속을 정처 없이 떠돌다 지쳐서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나의 하루는 아침에 시작될 수 있을까? 시작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