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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 수 지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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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Aug 09. 2020

인생은 판타지가 아니니까

보건교사 안은영

판타지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소설 속 세계가 좋았다. 왠지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과, 내가 특별해진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그런 점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난 전혀 저런 인물이 될 수 없고 저런 능력을 가질 수가 없는데, 주인공들은 늘 특별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붙잡고 있는게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유명세를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책을 좋아하는 이웃 블로거들은 정세랑 작가의 책을 자주 읽었고 나는 그 책들을 읽지 않고도 접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의 책을 읽어보려 줄거리를 읽었는데, 왠걸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야?싶은 이야기였다. 공상과학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엉뚱한 상상을 필터도 거치지 않은 채 글을 써낸것만 같았다. 줄거리를 읽고 이 책들은 내스타일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나의 최대의 실수였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세화해변 근처에 있는 '풀무질'이라는 책방에 들렀다. 해변 앞쪽의 동네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풀이 우거진 나무로 된 집이었다. 어떤 책을 살지 고르다가 우연히 '보건교사 안은영'이 눈에 들어왔다. 내 직업상 교사로 갈 수 있는 길은 보건교사였기 때문에 관심이 갔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이름이 단호하게 나온것이 왠지 82년생 김지영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망설임 없이 책을 들었고 책방 주인의 도장을 받은 책을 들고나와 카페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제주도 여행이 끝나고 나서 다른 책을 사들이고 보는 바람에 읽기를 늦게 마치긴 했지만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놓고서 생동감 있는 인물들까지 그려내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것 같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안은영과 홍인표의 모습은 어떨까. 내가 생각하던 그 모습 그대로일까? 넷플릭스로 영상화 되는 보건교사 안은영은 또 어떤 모습일까. 모든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안은영의 초등학교 동창이 죽어서 나타났을때, 붙잡고 싶지만 붙잡지 않았던 안은영의 모습은 어떨까. 글로도 그 슬픔이 전해져서 나도 한적 울적해지기도 했다. 나는 몰랐다. 지금까지 작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만을 보다가 작가가 만든 세상을 보니, 왠지 현실에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있었으면 좋겠는 그런 이야기. 보건교사 안은영의 끝맺음도 좋았다. 지영을 만나면서 지영과 은영을 계속 비교하던 인표가 얼마나 웃기던지. 그게 바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걸 모르면서 몇년동안 손을 잡으며 충전을 하는 인표와 은영이 새삼 귀엽더랬다. 해피엔딩은 너무 좋았지만 그렇게 끝내버리기는 아쉬운 인표와 은영이었다.


평범한 하루에서 무지개색 총과 칼을 든 은영을 찾아낸다면 나는 기꺼이 인표처럼 충전기가 되어줄수 있을텐데. 과연 나에게 인표가 가진것만큼의 보호막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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