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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 수 지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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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Oct 14. 2023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인 쿠팡 세척 알바생의 6시간

직장을 그만두고 7월부터 4개월째 일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7월은 제주도생활, 8월은 대구로 이사 갈 준비, 9월은 대구에 이사 오고 학교 다니기, 10월에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삼교대가 아닐 것, 오후에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연봉이 적어도 3500만 원 이상은 될 것. 이러한 조건들을 걸고 일자리를 찾아보니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광주광역시보다는 대구광역시가 규모도 크니 직업환경도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지방 어느 곳을 가든 일자리는 없는 게 마찬가지다. 이쯤 되니 직장을 그만두고 도시를 옮겨온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물론, 매주 학교를 꼬박꼬박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새로운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내 선택을 후회하는 고민을 간간히 해보는 중이다.


그렇게 수입 없이 지내던 세월이 계속되니 당장 돈이 없어 굶진 않더라도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어쩔 수 없이 또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생산성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토록 답답하고 무기력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노동을 하고 일을 하며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평일의 어느 날, 급기야 알바천국 어플을 깔기에 이르렀다. 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직장 대신 시간 조율이 비교적 편한 파트타임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지역을 선택하고 일자리를 찾아보니 꽤 할만한 것들이 많았다. 다만, 도서관 파트타임이나 영어과외 외에는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기에 음식점이나 쿠팡 알바 같은 일을 하기에 망설여졌다. 우선,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에(쿠팡 알바는 지원하고도 취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기에) 쿠팡 세척 아르바이트에 지원서를 냈다. 간단한 개인정보만 입력하면 되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다음날 오후, 도서관에 가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여러 회사에 지원서를 넣고 있는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단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면, 010이 적힌 모르는 번호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 인사 담당자의 번호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도서관이라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담당자입니다' 소리만 듣고 얼마 전 지원했던 센터 합격 전화인가 보다 하고 받았더니, 쿠팡 담당자가 아니신가. 일할 수 있냐는 물음에 '네~ 가능해요'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를 반겨주는 건 쿠팡밖에 없는 것인가 갸우뚱하며 쓰던 자기소개서를 완성한다. 


오랜만에 '노동'이라는 걸 할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처음 하는 일에 서툰 것은 당연하지만 그 서투룸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새로운 일의 도전은 모험 그 자체였다. 8시까지 출근을 위하여 6시에 일어나야만 했는데 어쩐지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겨우겨우 잠을 청해 두 시간을 자고 나서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직장에 가기 싫은 심정을 오랜만에 느꼈달까. 갈까 말까 몇십 번 고민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쉬는 시간에는 밥도 먹을 생각에 집에서 닭가슴살 스테이크, 고구마, 양상추 도시락을 챙겼다. 물론 먹진 못했지만.


그렇게 생전 처음 하는 노동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일을 배우는 시간은 1분 남짓. 단순 반복 노동이었기에 배우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으나 숙련된 사람들의 업무 속도에 맞추려면 허겁지겁 몸을 써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이 되자 미친듯한 싫증이 났다. 이런 의미 없는 반복 업무를 6시간이나 해야 하다니. 평생 단순 노동을 하며 살아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생산성을 위해 일하러 온 나에게 차라리 비생산적이지만 게으른 백수가 낫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도저히 시간을 다 채울 엄두가 안나 작업반장님께 '시간을 다 채워야 하나요,,?' 물었더니 힘드냐고 물었고,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딨어 이것보다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상투적인 충고 아닌 조언을 하셨다. '몸이 아니라 정신상태가 힘들어요. 이 프레시백 씻어서 내가 얻는 게 돈 말고 뭔데요!!'가 나의 속마음이었지만 쉬는 시간이 지나고 기계적으로 다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프레시백 펼치는 기계와 사람 그 중간 사이.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을 하러 온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으나 멍 때리고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나는 쉬지 않고 세척을 위해 프레시백을 펼쳐야 했다. 드디어 마지막 시간을 채우고 일이 끝났다. 


녹초가 된 몸을 버스에 실었다. 노래를 들으며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스르르 잠이 든다. 불타는 발바닥과 뻐근한 팔과 어깨가 한숨 자고 나니 나아진 듯했다. 다시는 쿠팡 알바를 하지 않으리 다짐하며 도착한 집. 씻고 저녁을 먹고 SNS를 들르며 시간 소비적인 생활을 한다. 다음날 일어나면 온몸에 근육통이 엄청나겠지 하며 잠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몸에 놀랐다. 내가 영양제를 먹어서? 가끔 운동을 해서? 일을 안 해서 체력이 괜찮았나? 이렇게 멀쩡하면 안 되는데? 나 분명 힘들었는데? 이런 물음 가운데 '뭐야 할만하잖아?'를 느낀 어처구니없는 나의 생각을 고이 접어 모셔놓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왠지 시간이 나면 또 도전해 볼지 모르는 이 노동 지옥 쿠팡 알바. 새로운 경험치 획득에 의의를 두며, 추억으로만 남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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