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이 Oct 29. 2023

마음속에 울음 쌓기

평생 함께해 온 나의 무기력에게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는, 되는 일이 없어서 울고, 잘 풀리는 것 같은 때에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 두려워 운다. 울고 싶지 않아서, 전보다 나은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울 이유가 없는데도 울고 싶을 땐, 울음을 참는다. 우는 순간 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울고 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성이 생긴다. 울음을 참으면 내 감정을 쏟아내기 전까지 그 우울과 무기력과 울음이 나를 집어삼킨다. 모든 일에 의미가 없고 미래는 불행할 것 같으며, 살아있는 게 지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여전히 눈을 떴구나. 며칠 전까지는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오늘은 뭐 하지?'였다가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일을 못하면 어쩌지?'의 고민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아마도 첫 직장의 신규 시절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 보다.


나는 시간이 걸려도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잘 못하고, 서투르고 실수도 많지만, 끝까지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나의 그런 꾸준함과 끈기를 좋은 모습으로 봐줬다. 병원만 제외하고는.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을 어떤 과를 가야 할지 고민이었을 때 간호학과를 가는 것이 그리 썩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최선의 선택도 아니었지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이 이상한 문화가 가득한 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휴학도 했다. 물론 돌아오긴 했지만. 


나의 꾸준함과 끈기는 이 분야에선 썩 쓸모가 없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빨라야 했고 정확해야 했다. 초반의 나는 그게 안 됐다. 부족한 부분은 계속해봐야 능력치가 쌓이는데, 신규인 나한테 큰 일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바보처럼 살다가 일을 못하면 왜 아직도 못하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봤다.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1년은 이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며 누군가에게 도움은 될 수 있는 인력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실수가 있어도 너그러이 봐줬다. 나는 오히려 이게 더 상처였다. 이렇게 대해줄 수 있었을 것을, 그전에는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나는 일하면서 그때의 상처를 잊을 수 없다. 두고두고 생각나고 내 앞을 가로막는다. 새로운 곳에 가서 또 일 못하는 바보 같은 취급을 받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 그 걱정이 나를 삼키고 삼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일을 빨리 시작하면 좀 달라질까. 첫 출근까지 이틀이 남았다. 미리 인사를 하러 부서를 찾아갔을 때, 사람들의 친절과 상냥함이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친절하다가 내가 일을 못하면 돌변하진 않을까? 앞에선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뒤에선 남 얘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겠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고 내가 잘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스스로가 일을 잘하도록 기대한다.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잘해야,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잘해야, 버림받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생각들이 나를 끊임없이 옭아매지만 견뎌야 하는 사실이 괴롭다. 어쨌든 나는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 이 모든 감정과 일들을 겪어내야 한다. 터뜨리지 않으려 했던 나의 눈물은 터지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이 감정을 끌어내어 내 다음 할 일을 해야 했다. 과제도, 영어공부도, 첫 출근 할 부서의 공부도, 해야 할게 많았다. 주저앉아서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있을 시간이 없다. 


나의 이런 개개의 감정들을 블로그에 쓰고 싶었다. 블로그는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고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와 지인 주변에 나의 블로그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런 내 감정을 들키기가 싫었다. 그들은 고심해서 쓴 댓글이지만, 나에겐 어쭙잖은, 그런 위로도 받기가 싫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우울한 척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요즘 나의 블로그는 나의 페르소나 그 자체가 되었다. 일상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한테도 오픈이 되는 블로그가 이젠 보여주기식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읽히는 것이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내 글을 쓸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이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익명의 힘을 빌러 나를 마음껏 드러내고 싶다. 언제나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할 때면 글을 쓴다. 글 쓰는 것에 두려움은 없어 다행이다. 남들처럼 멋있게 쓰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애써 내 글쓰기 실력을 탓하진 않는다. 솔직한 것이 가장 큰 무기라고 여기는 나이기 때문에. 오늘도 덕분에 나아진 기분으로 글을 쓴다. 울고, 쓰고, 또 할 일을 한다. 언젠가는 나아질 거란 희망을 조금씩 가지며. 희망이 없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위해서 쓴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