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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Nov 12. 2023

다시 찾아온 우울의 늪

다시 겪고 싶지 않았어

 새로운 지역에 와서 새로운 직장에 다녔다. 11월 1일 입사하여 11월 8일 퇴사하였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나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새로운 우울과 불안을 경험했다. 참는 것을 제일 잘하던 내가,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둬 버렸다. 사람들은 나의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으니. 회사를 그만두고 왔다고 해서 내가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버티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버렸다는 사실에 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상태가 나아진 듯하여, 더 이상 우울할 일이 없을 거라 믿어, 의사가 권유하진 않았지만 항우울제 복용을 2-3달 중단하였다. 자의적인 선택이었다. 더 이상 일을 위하여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일만 하면 될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그 선택의 바탕이었다. 아마도 바람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벗어났으니 넌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을 거야! 마음껏 네 미래를 즐겨! 이런 바람이었을 것이다.


  퇴사를 하고 일정 시간 동안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지 않고, 걱정은 많았지만 불안을 견딜만한 괜찮은 상태였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놓아 울어야 했으며, 숨쉬기 힘들 만큼 울음이 가슴속에서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나에게, 괜찮은 것이 맞냐 되물었고 나는 괜찮을 거다, 괜찮지 않으면 안 된다 답했었다. 정신과 약을 오래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긴 병이니 직장을 그만두면 나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괜찮지 않았나 보다.


  매일매일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이대로 망한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그런 생각이 든다. ‘돈 때문에 다시 병원에 기어들어가 우울하게 살지도 몰라. 그렇다면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아서 행동하는 모든 것에 애를 써야 한다. 씻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모든 순간에 나는 애를 쓴다.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쉽게 떨쳐지는 법이 없다. 살아가려 애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 짐이 된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보아도, 사랑하는 나의 고양이들을 보아도, 행복하지가 않다. 그저 아가들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도 같이 가기를 바라는 생각만이 들뿐이다.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엔 ‘무기력’함은 너무나 단순하다. 나의 복합적인 이 마음가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우울함과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나를 바꾸려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 어느 것에도 무게를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겁다. 발에 찐득한 시멘트나 진흙을 묻혀 놓은 것 같다.


  약을 먹지 않으면 우울하고 힘이 없어 하루종일 눈물을 흘린다. 밥을 먹으려 해도 눈물을 흘린다. 부엌에 가도, 화장실에 가도, 눈물을 흘린다. 누구도 나에게 다그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고, 할 수 있다 용기를 북돋는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나의 불안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오롯이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그런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지쳐버렸고, 포기했다. 세상에서 참는 것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포기를 해버렸다. 포기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치욕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를 살리기 위한 포기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우선은 이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는 것은 이만하면 되었다. 내 우울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선 내 감정을 끊임없이 기록해야 한다. 나는 나아지려 노력하고 싶고, 나아지고 싶다. 우울에서 벗어나서 행복하진 않더라도, 삶의 의미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그냥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알 수가 없지만, 또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다짐을 해본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바람을 지켜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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