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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새 죽이기 ] 소설, 그리고 그래픽 노블

서평 - 앵무새 죽이기

by 논니

1960년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얼마전, 생일에 '앵무새 죽이기' 그래픽노블을 선물로 받았다.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원작소설도 함께 읽고 싶어 소설책도 주문했다.

그래픽노블은, 특별한 각색없이 원작을 충실히 복원해 냈다. (원작의 문구를 그대로 따온 부분이 대부분이었다.)




20대에 읽었던 이야기와 어느덧 40대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읽은 '앵무새 죽이기'는 또 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역시 살아온 경험치와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 들이는 것이 다르다.)

20대에는 단순히 부당한 차별을 받았던 흑인 인권에 대해 순수하게 분노했었다면, 지금은 내가 어떻게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지 그러러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이야기는 어린 소녀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아이의 눈으로 관찰한 것이기에 순수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고, 선입견에 의한 왜곡을 배제할 수 있으며, 부조리한 어른들의 생각과 행동을 더 부끄럽게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p455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 그래?"
(중략)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유대인을 핍박하는 히틀러는 악마라고 생각하면서, 흑인은 같은 인간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이중성을 꼬집은 장면이다. 입으로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자유를 부르짖으며 다른 인간의 인권을 짓밟고, 그 인간위에 군림하려 하는 어른들은 얼마나 위선적인지.










p368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중략)
"너희들은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 그래서 구역질이 나는 거지?"
p372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p392
이번에는 젬 오빠가 울 차례였습니다. 기뻐하는 군중을 헤치고 나오는 동안 오빠의 얼굴은 화가 나 흐른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말도 안 돼."
p393
"그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야. 그럴 때면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그럼 잘 자거라."

톰 로빈슨의 재판 이후, 불합리했던 그의 패소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분노했던 것은 아이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커가면서 환경에 길들여 지고, 어른들의 생각을 이어받고, 이기지 못할 싸움에서 상처 투성이가 되어가며 버티는 대신 슬쩍 다수의 편에 서서 안전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다수가 그렇게 하므로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라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그래서, 그래서 올바른 생각을 가진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p149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p200
"무슨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건......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어른이 되면 어쩌면 조금은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되돌아볼 거라는 사실이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중략)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p207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p213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용기와 신념이란, 비단 흑인의 인권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그래왔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까 시도조차 노력조차 해보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있는 시도로 세상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나는 나의 아들이 인간의 양심에 관계된 문제라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보기를 독려하고, 신념을 가지고 힘들게 버틸 때 응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p65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p174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399

"그건 우연이 아니었어. 지난 밤에 난 현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너희 모두가 인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 사이에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p407

"젬, 만약 너와 열한 명의 다른 애들이 배심원이었다면 톰은 풀려날 수 있었을 거야. 넌 여태껏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겠지. 톰의 배심원들은 평범한 삶을 사는 이성적인 인간 열두 명으로 구성되었어. 하지만 넌 그들과 이성 사이에 뭔가 끼어드는 것을 본 거야. 그날 밤 감옥 앞에서 네가 본 것도 이와 똑같은 거였지. 그 패거리가 발길을 돌렸을 때 그들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냐. 그들은 우리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되돌아 간 것뿐이지.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아무리 애써도 항상 공정할 수만은 없는 거야. 우리 법정에서 백인의 말과 흑인의 말이 서로 엇갈리면 이기는 쪽은 언제나 백인이지. 비열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쩌니."


p408

"너희들이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테지.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더 그런 일들을 목격하게 될 거야. 무지개 색깔 중 어떤 피부색을 하고 있건 한 인간이 평등하게 대접 받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면 거긴 바로 법정일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자신 원한을 배심원석까지 갖고 가기 마련이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넌 일상생활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속이는 걸 매일매일 보게 될 거다. 하지만 네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구나.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p418~420

"난이제 모두 알겠어. 요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알아낸 거야.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어. 우리나 이웃 사람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숲속에 사는 커닝햄 집안 사람 같은 사람들이 있고, 쓰레기장에 사는 유얼 집안 사람 같은 사람들이 있고, 흑인들이 있어."

(중략)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커닝햄 집안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커닝햄 집안 사람들은 유얼 집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유얼 집안 사람들은 흑인들을 증오하고 얕보지."

(중략)

"누구나 다 배워서 아는 거야. 날 때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월터도 자기 나름대로는 똑똑한 거야. 집에 남아서 아빠 일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종종 뒤쳐질 뿐이지.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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