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와 채우기
어제도 주희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왜 나는 30대에 컨설턴트로 일하며 그들에게 오지랖 있게 그들을 신경 쓰고 가르쳐주고 그랬던가? 청년 공동체에 나는 주희를 데려갔고 주희는 거기서 두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명에게는 유혹당하기도 하고 다른 한 명을 짝사랑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3살 많은 나에게 토로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런 걱정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끝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 일이 15년 전의 일인데도 어느 날 갑자기 어제 그 모습이 꿈에 나왔다. 더 이상 나는 주희를 만나지도 그녀의 소식도 모른다. 그녀가 어떤 남자를 데려와 결혼한 다음부터. 결국 다 그런 사건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다.
모든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가 되었다. 그들의 걱정을 집으로 가져와 나의 걱정이 되고, 그것이 옳은 일인 양 나의 인생을 소비했다. 그 한 명은 단지 한 예이다. 고객들은 친구들은 심지어 형제와 부모님도 자신의 문제를 가져와 나와 이야기하면서 분통을 터트리고 괴로움을 토하며 그런 삶이 나에게 36년간 계속되었다.
언제부터 나는 나의 것이 아닌 타인들의 근심 두려움 고민들에 둘러 쌓여 살아왔던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방이 하나여서 나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자고 먹고 했다. 밤에 부모님은 둘이 10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역경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근심처럼 걱정하고 기도했다. 그러한 모습을 21살 대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보고 자랐다. 내가 집을 얻어 나가기 까지. 나는 교회에서 자라나 교회 안에 방에서 부모님이 교인들로부터 걸려오는 온갖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매일 문제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김집사, 다른 날을 허집사. 장집사는 41살로 고된 일을 했고, 아내 집사님이 바람이 나자 4일 전 자살을 했다. 어떻게 이제 아내 집사님은 자녀 셋을 데리고 살 것인가? 그 이야기를 방 하나에서 나는 부모님이 고민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6학년인 내가 어린 나이에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학교에 가서도 나는 그런 집안에서 부모님께 들었던 말들이 마음에 남아있어 손이 떨렸다.
그런 어렸을 때 과정이 내가 대학원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하게 했다. 졸업 후 금융 컨설턴트 일을 대기업에서 10년간 일하고, 그만두고 자영업을 5년간 했다. 그렇게 장소와 환경이 변해도 나의 운명은 계속되었다. 계속 사람들은 내게 찾아와 자기의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이것이 정말 업보란 말인가? 한 해의 하루도 편안히 쉴 날이 없었다. 2014년도에 엄마가 자궁암 말기를 진단받아 회사를 다니며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 그것은 2016년까지 지속되었다. 2017년도에는 딸이 데려온 토끼가 새끼를 6마리 낳아 분양했는데 토기 8마리를 살리기 위해 강원도를 자주 오갔다. 결국 다시 집으로 데려와 5개월을 돌보고 다른 곳에 보냈으나, 장애아들이 생겨 세 마리 장애토끼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 살려 놓았다. 나의 토끼만 살고, 모두 다른 사람들이 키우던 토끼들이 죽었다고 소식을 들었다.
2018년부터 나는 암에 걸린 자녀 때문에 속앓이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애를 썼고, 결국 그녀의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자, 나 또한 그 슬픔이 내게 고스란히 왔다. 2019년에 큰오빠가 암으로 6개월간 치료하다 돌아가셨다. 새 언니는 모든 소통을 내게 했다. 위로 오빠 둘과 부모님은 그리 친하지 않았던 터라 내게 많은 것을 토로했다. 2019년 아버지는 고관절이 부러져 5개월간 입원하셨고 2020년에는 침대에서 떨어지셔서 목을 움직이지 못하고 또 병원에 4개월간 입원하셨다. 2020년부터는 신장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 받으시며 우울증에 빠지신 듯하셨다. 그는 내게 전화로도 만나서도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2020년 11월 8일 나의 시추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었다. 나는 시추를 잃고 너무나 울면서도 힘들었다. 12년간 자식처럼 키워왔는데, 그날 산책을 해달라고 내게 매달렸는데 '나에게 너까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면 어떡하냐고' 신경질을 낸 날이었다. 2021년은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직업적으로 힘들게 되니, 일주일에 세 번씩 20분씩 나에게 성을 내셨다. 자신의 85살 된 슬픔을 지속적으로 나에게 말하시며 자신의 일을 풀어주기를 바라셨다. 2021년 나의 토끼가 자궁이 터져 죽었고 내가 도와주던 시베리안 허스키 유기견이 림프암으로 쓰러져갈 때 나는 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서 20일간 호스피스를 도와주었다.
이렇게 나는 8년 간 많은 선한 일을 하고, 많은 이들을 도와주었지만 결국 2022년 2월 큰 병을 얻는 진단을 받았다. 죽을 수도 있는 병명이었다. 22년 4월 15일 난 큰 수술을 하게 되었으며, 죽음의 기로에 있는 경험을 했다. 전신마취를 했고 결국 6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나 자신이 번죄물이 될 정도로, 가족을 포함해 타인의 근심을 들어주고 동조해 주며 도와주는 삶이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일어날 문제야,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고난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이다. 오로시 자신이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들의 욕심과 탐욕 그리고 시기와 욕망에 기반해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자신도 두려워서 내게 이야기하는 것에 나쁜 에너지를 난 전혀 방어하지 못하고 내 몸에 쌓아온 것이다.
이젠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는 내 것이 아닌 모든 감정과 모든 두려움은 버려야 한다. 듣는 것도 먹는 것도 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세상 팔방에는 자신이 괴로워 타인들도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매체도 많다. 어두운 영화와 어두운 내용의 뉴스들이 모두 세상 사람들이 함께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 기기 바라는 것 같았다. 결국 두려움을 서로 나누어가져 세상을 바꾸자는 것인지, 그러나 두려움에 기초한 나눔은 결코 서로를 구원하지도 도와주지도 못한다.
그것이 내가 다시 살게 되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이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나는 almighty가 아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들의 말을 제지하지 못하고 역정 내는 것을 다 들어주다가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함몰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두려움을 나누어 봤자 그것은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것이지 두려움은 안정을 주지 못한다. 사랑에 기초해야만이 안정을 가질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다시 버려야 할 때이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