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존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 자존감은 내 안의 신성에서 온다. 즉 나라는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의 자존감은 그에게 서로부터 온다. 더 이상 나의 자존감의 상승과 하락은 세상의 부모와 인간관계, 내가 이루어 놓은 성취들이 아니었다. 2022년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현실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이 나의 자존감인 줄 알았다. ' 딸의 자존감' 2012년 서울문화사에서 내가 지은 책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건강, 일 사회성 인간관계 의식주 자아개발 등등등. 그 책을 쓸 때는 30대였다. 그 나이에는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았고 어리니깐.
그러나 이젠 40대가 넘었고 건강에 큰 고비를 겪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실망감을 갖게 되자, 시각이 달라졌다. 또 죽음을 겪고 나니, 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하심이 내가 이 땅에서 생명력 있고 두려움 없이 천국을 누리기 위함에 오셨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시인하고 살려고 했으나, 삶에 적용하기가 매우 힘들다. 나는 어제도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가치를 잃고, 또 삶의 문제에 짓눌려 살았다. 생각을 끊고 싶어 춤을 배우면서도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부동산 전세가 나가지 않아 짓눌리는 내 마음의 고통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진정 나는 주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을 얼마나 내 삶에 적용하며 누려왔는가? 그래야 창조성의 생기고, 우울함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을 잘할 수 있다.
어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문득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이런 울림이 펴져왔다.
'휘현아! 네가 겨우 부동산 문제 4억에 짓눌려, 몇 달 동안 고민 하는 것을 풀어주시려고, 주님은 그것 돈 문제 때문에 그 험난한 십자가에 피 흘리며 못 박혀 죽지 않으셨단다. ' ' 너는 그 이상이다. ' 너의 돈문제가 아니라 영혼문제이다. 즉 돈에 시달리고 걱정근심보다 오늘 이 시간을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며 주님의 지혜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때 돈은 잃더라도 너의 영혼은 죽지 않는다. 네가 그 돈보다 크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찬양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2022년 4월 15일 대수술에서 다시 치료하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요즘 어려움이 생기면, 그날 나는 죽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들에게도 '나는 죽었으니 당신들은 이제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소연을 내게 하지 말고 당신 문제에 함몰되어 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 나는 속 안에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하나님이 이제는 나 자신의 길을 가고, 나의 삶을 살도록 강력하게 이야기 하심을 나는 2022년 1년 동안 경험했다. 지금 내가 현재 해야 할 일은 하루하루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매일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도 너무나 오랫동안 펼쳐 놓았던 재정적 사업적인 일들이 한동안 손을 놓고 살았더니 무더기로 다가와 풀어야 할 문제로 나의 정신을 압박했다. 매달 나가야 하는 1700만 원의 지출비용. 직원 월급, 부동산 이자, 주식신용들 너무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쌓아왔던 바벨탑이 무너져 내릴 때,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문제에 함몰되지 않기로 했다. 이 문제가 끝나보았자 또 문제가 온다. 즉 하나님이 계신 나라에서는 더 이상 나의 문제는 문제가 아님을 믿자.
현실에서 살아가며 암흑의 세계에 있는 마귀는 내가 하면 싫어하는 것들이 있었다. 예수를 누리는 것.
생명을 누리는 것, 기쁨을 누리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도록 타인들을 통해, 문제들을 통해, 두려움 걱정 분노 화를 내게 주어 내 이 시간을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현재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과거와 미래에 빠지게 만든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권력욕과 명예욕에 빠져 또 다른 중독자로 빠져 영원하신 생명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마귀는 40일 동안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세상의 왕이 되게 해 주겠다는 유혹으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자이며 위대한 일을 했는지 증명하게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즉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이 성취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나의 인생에서 타인의 일에 중요한 가족들의 일에 휘말려 들게 만들려는 작정이다. 마귀는 권력적인 소시오패스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생명이 아닌 도구로 사용하기 원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런 모습이 물질이 최고가 된 사회에서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도 만연하다. ' 네가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무슨 관계가 필요가 있니?' 이렇게 말하며 서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고 쓸모없으면 연락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즉 이렇게 자신의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을 때, 자존감은 박살 난다. 결국 살아도 자신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는 지옥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권력 명예 돈 인기들을 추구하게 하여 인생을 계속 그것만 하다가 나를 도구로 전락시켜 자존감과 존엄성을 착취하려는 것이다. 착취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게 하여 영적인 죽음으로 몰아가게 하려는 점이 그들의 목표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의 나라 즉 사랑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삶에서 더 이상 문제해결 전도사가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삼고 나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에 번죄물이 될 필요가 없다. 나는 참으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누릴 것이다.
가정에서도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일과 성공 그리고 권력에 중독돼야 가족구성원들이, 지인들이 그 한 사람의 노동 및 중독의 대가로 받은 영예를 누릴 수 있고 먹고 산다. 난 그 점이 타인에 대해 번죄물이 되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내가 인생 동안,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수고하고 길쌈하며 노동에 미치길 원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사장도, 로펌변호사도 전문가도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노예행위이다. 이 행위가 끊임없이 나의 생각과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는 노예행위일 수 있다. 즉 사랑 안에서만 인간은 자유하며 자유 안에서만 자존감이 유지되고,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바로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번죄물이 되어 단 한 번에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나의 값을 다 치러 주셨기에 나의 영혼은 자유하다. 결국 내 안의 신성,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자존감은 성립된다. 이제 예수님이 이기신 승전보를 내 삶에 초대하여 나는 예수를 누리면 그뿐이다. 즉 이때 나의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주의 자녀라면 그 권능이 얼마나 크겠는가? 천국을 먼저 얻으면 행복하면서도 누리면서도 작은 영감으로 작은 빛으로도 힘을 내어 더 이상 나의 생명을 고갈하지 않고 먹고사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이것을 이 땅에서 천국 누리기.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 누리 기이다. 바로 진정한 자존감이 있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