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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9. 2021

9. 가늘고 긴 요가 여정 떠나기

<힘들 날도 좌절한 날도 나의 요가 수련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


 좋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듯 몸이 흘러가는 때가 있다.

 내가 요가를 하고 있는지 아사나에 집중하는지 이것이 수련인지 뭔지 모를 상황이다.

 퇴근 후 몸과 마음이 유난히도 지친 날 나는 수련마저 고도의 예리함과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매 아사나를 완벽하고 정교하게 해내려는 집중과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서 수련을 시작하기 조차 어렵다.

 그럴 때는 최고의 아사나를 위한 심리적 압박보다는 몸에 힘을 빼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 야경이나 혹은 멍 때리며 즐기자는 마음으로 좋은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긴다. 그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 순간 내가 조금 전에 어떤 아사나를 빠트리고 넘어왔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녹화된 수련 영상을 보면 빠짐없이 모든 아사나를 했던 적이 많다. 내 의식이 아사나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전체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수련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빈야사인가? 오늘도 물 흐르듯~


 이 방법이 옳다 나쁘다 말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완벽한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요가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보다 오늘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수련을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이 더 요가에 가까워지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동작 동작마다 의식을 두고 정성스럽게 수련한 날도, 동작을 잊은 채 전체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수련을 한 날도 모두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의식했던 수련은 한 단계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면, 무의식적이지만 그저 꾸준히 수련했던 날은 시간의 깊이를 쌓아주었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일 때도, 슬프거나 무기력할 때도, 화가 나고 분노스러울 때도 다양한 감정과 함께 수련을 거쳐왔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 속에서도 수련으로 나를 이끌어 오다 보니, 이제 어떤 불편한 감정 때문에 '오늘 수련 포기할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불편한 감정들도 수련의 시간을 통과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불편한 감정일 때는 아무것에도 의욕이 솟지 않아 수련에 들어가기까지가 제일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하고 괴로운 순간에도 내가 수련을 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나은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매트 위로 올라간다.


 정신이 괴로워 의식의 집중 없이 수련한 날은 큰 어려움 없이, 심지어 챌린지 아사나를 하는 순간도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가 수련을 마친다. 오히려 힘을 빼고 의식을 안 하고 진행하다 보면 수련이 더 편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오늘은 힘드니까 아무 생각 없이 수련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수련을 해나가면서 내 머리는 점점 맑아진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좋은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련을 할 때 수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때는 수련 시간 내내 거의 책 한 권을 써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또렷해진다.

 영화'리밋리스'에 보면 주인공이 우연히 구한 알약 하나를 먹고 갑자기 머리가 총명해져서 하룻밤사이 책 한 권 탈고를 하듯. 그러나 나는 수련이 끝남과 동시에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사라진다. 아쉽게도.


 요가 수련을 하다 보면 평소에 그저 흘러 보냈던 수많은 상념들이 하나의 명쾌한 이야기로 정리되기도 한다.

가끔 그럴 때 수련을 끊고 글을 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마저 하면 그날은 수련이 글쓰기의 도구가 되어버린 순수한 목적을 잃은 것이라 그저 키워드로 기억하려고 노력한 뒤, 수련을 마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작성을 한다. 그렇게 글쓰기에 몰입하다가... 아 참 오늘 내 사랑 사바아사나를 건너뛰어 버렸네 하고 뒤늦게 사바아사나를 하거나 누워서 복식호흡 참선을 잠시 한다.

 글쓰기에 몰입하여 요가 수련의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뒤늦게라도 마침표를 찍어야 나의 수련은 완벽하게 끝이 난 셈이 된다.


 요가의 바른 수련 방법은 아니지만, 나의 일상에 잘 맞을 것 같은 그저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수련의 방식을 각색하지 못했다면 매일 하는 수련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수련 사이에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빼먹고 일하다가 뒤늦게 사바아사나에 들어가겠는가?


 뒤늦게서야 사바아사나로 돌아와 누운 날은 깊은 사바아사나에 빠져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럴 때는 그저 호흡에 집중하여 차라리 참선을 한다. 참선을 모르던 시절에는 그저 의식하지 않는 편안한 요가호흡(easy breath)를 진행했다. 어떤 것이든 호흡을 하는 시간은 참 좋다. 예전에는 ‘평소에도 늘 숨을 쉬는데 호흡이란 걸 따로 시간 내어할 일인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호흡으로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서서히 느껴가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는 꼭 호흡 수련으로 정리한다.


 난 유난히 겁이 많고 호들갑을 떠는 성격이라 암발란스 같은 챌린지 동작은 참으로 무섭다. 수련의 육체적 어려움보다 공포의 극복의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무리는 하지 않는다. 평생 요가를 하면서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암발란스를 하려면 부상 없이 안전하게 수련해야 한다.

 직접 선생님의 핸즈온을 받는 순간이 아니라면 혼자 수련에서 너무 공포가 클 때 무리하게 도전하지는 않는다. 이미 공포의 감정이 내 몸을 옥죄고 있기에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양손으로 점프를 하여 몸을 띄우면서도 양자 감정이 싸우고 있다. 점프해서 손으로만 서고 싶다는 마음과 온몸을 띄우게 되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며, 점프하라는 마음과 하지 마라는 마음이 싸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실패의 확률을 반으로 계산하면서 그것은 안 되는 일이다.


 부상을 당하면 한동안 요가를 할 수 없다. 부상이 없더라도 지속적인 수련으로 어떤 한 부위의 통증이나 불편함이 생기면 수련이 꺼려지거나 피하게 된다.

 수련을 한번 꺼리다 보면 계속 수련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아프지 않고 마음도 준비가 될 때까지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한 번씩 욕심이 생겨서 무리하게 해보기도 하지만 이내,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거북이처럼 기어서 가늘고 긴 요가 여정을 가리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에고를 버려라."


 안전하고 정확하게 가야 오래갈 수 있다.

 내 몸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에고에 깊이 빠져서 욕심을 내면 부상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순간의 욕심으로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참으로 겁쟁이라 챌린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몸의 준비보다 마인드 세팅을 더 오래 해야 암발란스에 성공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가늘고 길어진 요가 여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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