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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8. 2021

8. 요가를 쓰다.

<기록의 힘 그리고 이미지네이션>



 기록은 상상을 현실로,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현실 속의 결심과 행동으로 만들어 준다. 

글로 남겨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마음속의 바람과 생각도 구체화되지 않는다. 글로 작성을 하면서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문장이 쌓이면 아이디어가 쌓인다고 한다.

 어떻게 살지 막막할 때,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는 일단 다양한 생각을 글을 써보면 좋을 것 같다. 글에서 스스로의 길과 생각의 방향을 정리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도 모르는 내 앞 길과 내 마음을 글로 써야 비로소 결심이 되고 방향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수많은 생각과 결정들이 내 이메일 '내게 쓰기'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글로 쓰면서 추상적인 상황이 실제적인 계획으로 정리가 되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 있던 바램과 소망이 기록이 되는 순간 계획이 구체화되기도 한다.

 글로 기록이 되면서 생각의 목표가 명확해진다. 형체가 없던 어떤 감정이 목표라는 실체로 등장한다. 글로 생각을 써내려 가면서 가시적이고 정확한 퀘스트가 나타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학이 시작될 때, 늘 생활 계획표를 짜라고 했던 선생님의 지시가 왜 이제야 마음에 와닿을까. 글이 되어야 실체가 된다는 교훈이었을 것이다. 물론 남이 시켜서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작성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일기처럼 내 마음과 내 생각을 편안하게 작성하다 보면 그 글에서 내 길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것이다. 글을 다듬고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계획이라는 간결한 형태와 목표라는 방향성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 요가를 글로 쓴다는 것은 나의 다짐이며 결심을 굳건히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매일 요가를 하며 나의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날 하루가 너무 지친 날이면 나 역시 요가 매트까지 올라가는 결심이 무척 힘들기는 하다. 혼자서 꾸역꾸역 했으면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소셜미디어에 내 수련 영상과 기록을 올린다. 이러한 공개적인 공간에서 나와의 약속이 깨어지게 만들 수는 없다.(비공개 인스타이긴 하지만.)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리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공개적으로 알렸다는 것은 자존심과 명예를 걸었다는 말이다. 이따금 얄팍한 자존심과 허영심이 동기부여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참선 매뉴얼_테오도르 준 박 지음]


 요가 수련 일지를 작성하고 공유하면서 얻게 되는 이득도 많다. SNS에 방문해 주는 많은 선생님들이 자세에 대한 의견 및 조언을 준다. 혼자 백날 했다가 안 되는 것도 조언에 따라 사소한 것을 몇 개 바꾸면 훨씬 가벼워지기도 하고 안전하게 수련이 진행되기도 한다. 조언대로 한다고 한 번에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가능한 수련을 위한 방법에 대한 조언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따뜻한 응원과 칭찬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요가 기록의 또 다른 이점은 내게 있어 요가수련을 작성하는 것이 오답노트 혹은 예습노트를 정리하는 것과 같다. 자고로 시험도 끝난 날 노는 것이 아니라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마무리다. 모르는 것을 알고 정리해서 넘어가는 것이 시험공부의 끝이다. 그래서 시험공부는 시험 보기 전 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답노트가 마무리되는 날이 시험공부가 마무리되는 날인 것이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고 놀러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나는 집에 가서 오답노트를 만들었다.(얄미운 거 인정)


 수련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영상을 돌려보며 그날 수련에서 아쉬웠던 점, 어떤 아사나가 어떻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날의 기분이나 몸의 상태 등을 정리한다. 또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는 수련의 방향이나 다짐을 쓰기도 한다. 다음 수련에서 아쉬운 점을 또 까먹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내용을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어느 순간 수련을 할 때 그 포인트가 잊히지 않고 기억이나 내 몸에 적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조금씩 하나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요가 수련일지를 쓰지 않았다면 나의 수련이 어떠했을지 돌이켜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몸의 감각에만 의지하며 하루하루 지났을지도 모른다. 내 수련 일지가 좋다는 것은 아니고 아사나에 대한 분석도 많지만 힘든 내용의 징징거림도 많다. 수련일지에 힘들었던 감정을 정리하고 나면 이상하게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온양 속이 아주 후련하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글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도 생활에 밸런스를 많이 찾아갔지만 요가 수련일지를 쓰면서도 정신적인 밸런스에 큰 도움이 되었다.


 평소에 불편하고 기분 나쁜 것을 잘 표현하지 않고 참으며 살다 보니 글로 정제하며 분노를 쓴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감정을 돌아보며 요가적인 밸런스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그저 내가 돌아보고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힘든 마음이 많이 위로가 된다.


 수련일지를 쓴다는 것만으로 탁월하게 실력이 좋아진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아사나의 정확한 정렬이나 방법을 익히기까지 아쉬웠던 점을 계속 생각해 보며 내 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컨트롤해서 도전해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몸이 안 따라주기 때문에 여러 글이나 책에서 지식을 많이 얻고 있다. 그것이 아직 내 몸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해한 것이 내 몸으로 구현되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원래 모든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보다 느리다. 요가를 하기 전에는 팔다리 같은 가시적인 부위를 생존을 위해 움직여만 봤지 신체 부위를 통제를 하며 움직임이나 자세를 조율해 나가는 방법을 것을 아예 몰랐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하는 말 '내 몸인데 내 맘 같지 않네.'이다.


'어깨를 으쓱하고 싶지 않고 내리고 싶은데 내 어깨가 내려가지 않음, 등이 말리지 않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싶은데 척추가 세워지지 않음.' 머리로는 아는데 몸에서 그 통제 방법을 이행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수련 일기를 쓰며 내가 도달해야 할 완성 자세를 찾아보고 내 자세와 비교해보기도 한다. 잔인하지만 내 사진과 자료 사진을 같은 각도에서 캡처해서 하나하나의 각도, 시선을 비교한다. 부족한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가슴이 많이 쓰릴 때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자세를 보며 다음에는 척추를 저렇게, 견갑은 이렇게, 햄스트링은 더 팽팽하게를 생각하며 내 몸의 완성 자세를 상상한다.


 요가에도 이미지네이션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어떤 특정 동작을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성공한 나의 모습까지 상상하면서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 본다. 나는 이미지네이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련을 할 시간이 많이 없을 때 한 번에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기에 마인드 세팅을 사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길을 걸을 때,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출퇴근 시간에 어떤 아사나의 완성 자세를 하는 나의 모습을 머리로 그린다. 문장으로 외우는 것보다 어떤 자세에서 다리는 이렇게 골반은 이렇게 하나하나의 정렬을 머릿속으로 프로세스화 하면 실제 내가 그 아사나를 할 때 동시다발적으로 그 정렬을 한 번에 고려하여 진행하게 된다. 수련의 방법을 문장으로 외우면 그걸 동시에 어떻게 다하냐는 생각에 무척 어렵게 느껴지지만 상상으로 그 아사나를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으로 돌리는 것을 자주 하다 보면 실제 수련할 때는 그 모든 것들이 단 몇 초 이내에 내 몸으로  동시 적용이 된다.


 수련을 기록해 나감에 있어서 자세의 완성과 같은 목적성 분명한 일만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매일을 수련을 채워 나가며 요가와 맞닿은 여러 가지 생각이나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다. 수련과 상관은 없지만 수련으로 생겨나 그 감정들은 수련 중에도 내 머릿속을 강타해 나가고 평상시 샤워하며 머리를 감을 때, 밥을 먹을 때, 고양이와 놀아줄 때, 잠결에도 스쳐 지나간다.

 기록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주로 핸드폰 메모장이나 이메일 내게 쓰기 페이지에 미리 키워드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작성해 놓는다.

 그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면 때로는 한 편의 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사나 완성에 대한 실용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가를 일상으로 들이며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을 기록하면서 생활을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 나는 이런 감정이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런 감정을 스스로 느끼고 알아간다는 점은 내 삶의 중심을 잡기에 중요한 시간들이다.


 오늘 요가 시간에 선생님이 밸런스에 대해 무척 공감되는 말씀 하셨다. "요가를 하면서 밸런스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감정을 없애거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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