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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6. 2021

7. 프랙탈 구조 같은 인생

<오늘 하루는 전체 인생의 축소판>


 사람의 하루에는 일생이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스스로 강력하게 부인했다. 내 하루가 내 인생 전체를 대표할리가 없다며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점은 얼추 맞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오늘 같은 하루가 겹겹이 모여 결국은 전체 인생이 되는 것이니까.

 오늘 하루를 우리 인생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자연의 황금비율 중 '프랙탈 구조'라는 것이 있다. 

 프랙탈은 쉽게 말하면 부분과 전체의 모습이 동일한 구조를 말하는데 인형 안에 인형이 끝없이 들어있는 러시아 민속인형 마트료시카를 생각하면 된다. 마트료시카에서 분리해 낸 가장 작은 인형은 가장 큰 인형과 모양이 동일하다.

 프랙탈 구조로 보면 인생의 가장 작은 오늘 하루는 우리 인생 전체의 모습과 같다는 말이다.


 프랙탈 구조를 말할 때 나는 항상 브로콜리가 생각이 난다. 

 브로콜리를 손질할 때 큰 기둥에서 송이를 하나씩 뜯어낸다. 송이에서 작은 송이를 무한정 뜯어낼 수 있다. 그렇게 더 이상 뜯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브로콜리 송이도 전체 큰 브로콜리와 모양이 동일하다.(미니 브로콜리는 너무 귀엽기도 하다.) 브로콜리 송이 같은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 브로콜리 하나의 몸통을 완성할 수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면, 내 요가의 프랙탈은? 

 마운틴 포즈가 생각이 난다.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앞으로 펼쳐질 아사나가 제대로 나갈지 잘 못 될지 알 수 있는 대표 동작 중 하나다. 그저 양팔을 머리 위로 뻗어서 일자로 서는 동작일 뿐인데 나는 그 마운틴 포즈 조차 하지 못했다. 

 우선 골반의 전방경사로 인하여 허리에 과도한 아치를 만들고 엉덩이를 뒤로 쑤욱 내밀어 척추를 골반 앞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일자로 양발을 지탱하고 서 있을 때 중립 척추를 유지해야 하는데 복부와 골반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그 자세가 나오는지 전혀 몰랐다. 항상 복부(코어)에 힘이 없어 골반에 기대어 살던 것이 습관이라 서 있는 기본자세에서도 중립 척추를 못 만들고 누워서는 심지어 허리 아래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많이 떴다.


 척주 중립 형태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배를 당기고 골반을 살짝 뒤로 기울이는 형태로 내 신체를 컨트롤해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을 때는 또다시 전방경사로 골반이 무너지기도 한다. 타다사나나 마운틴포즈 같은 기본적으로 서 있는 모습조차 불안정한 사람은 아예 모든 자세에서 중립척추가 필요할 때 중립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배를 당기고 몸의 축을 컨트롤하지 못하니 매번 골반에 기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마운틴포즈와 타다사나에서 멀쩡하게(중립척추로) 서 있는 걸 연습하는 것도 참으로 오래 시간이 걸렸다. 항상 영상으로 찍고, 서있는 모습을 관찰하고, 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봤다. 남들이 아무리 '배 당겨라, 척추 세워라, 허리아치 조심하라.' 말해도 내가 내 몸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스스로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자세를 조정할 수는 없다. 


 결국 스스로가 몸의 각도를 다양하게 조절해 가며 그 감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사나 수련에서 머리가 이해하는 것을 몸이 즉각 이행하지 못하는 슬픔이다. 

 올바른 자세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내 몸은 내가 조정해 가며 목표 점과 가까워지게 테스트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마운틴포즈와 타다사나에서 겨우 중립척추를 만들 수 있고 나서야 다른 모든 아사나 자세에서 중립 척추가 필요할 때 내 복부와 골반, 몸을 조절해 바르게 쓸 수 있었다.

 내 요가의 프랙탈은 그저 '중립척추'로 바로 서있기 부터 교정해 나가며 차츰 전체 아사나에서 배 당기고 호흡하는 것까지 많은 부분에서 개선을 해 나갈 수 있었다.


 내 전체 인생 축소판 같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한번 돌아보게 된다. 

 평일을 기준으로 내 전체 인생을 본다면, 1/2 이상의 시간을 경제활동을 하며 1/4 이상을 잠에 투자하고 있다. 하루 1시간 요가를 한다면 인생 전체의 1/24을 요가에 시간을 할애하고, 하루 15분 책을 읽는다면 1/96만큼 전체 인생에서 독서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15분 독서는 96세까지 산다고 감안했을 때 내 총인생에서 1년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 방학 시작마다 그렸던 24시간 원형 하루 일과표가 있다. 

 어른이 된 평일 일과표를 보며 일과 수면 같은 고정 값을 빼고 나면 몇 가지 선을 더 추가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 보곤 한다. 단 하루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내 하루가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은 선은 하나씩이지만 평생의 시간 동안 모이면 그 작은 선도 모여 어떤 큰 형태가 되어있을 것 같다.

 단 10분의 오늘이 모여 평생의 시간으로 보면 엄청나게 큰 시간이 되어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평일 외에 주말의 하루는 오롯이 내 의지로 설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주말은 이틀이지만 더 주도적인 의식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전체 인생의 축소판처럼 살 수 있다. 내가 원했던 전체 인생의 모습이 있다면 주말 이틀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주말 시간은 꿈에 조금 더 가까운 인생 프랙탈 구조로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고 내 전체 인생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실망스럽다면 휴일의 모습 하루, 이틀이라도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대로 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생의 전체 모습의 축소판은 오늘이라는 작은 하루가 모인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며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을 작지만 하나하나 실천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평일 힘든 회사 일과 이후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의식을 가지고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요가 수련이 내 인생에 더 깊이 스며들기를 바라며 주말의 수련은 조금 더 의식을 갖고 수련을 한다. 평소 못했던 챌린지 동작들도 부분 연습을 해본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아침/저녁 가볍게 두 번 수련을 하기도 한다. 내 인생 전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어떤 시간에는 수련이 내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독서이다. 평일에는 쪽 시간을 이용해 5~10분 정도씩 쪼개기 독서를 한다. 주말 아침에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아침 최소 30~1시간 이상 독서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 인생이 더 많은 독서의 시간이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하루의 프랙탈 구조를 보면 생활이 아주 단순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하다면 단순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과 수면 외에 나머지 해야 할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매진해도 좋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하루 프랙탈 구조를 보면 경제활동이나 수면을 제외하고 나머지 1/4의 시간이 통으로 날아가고 없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오늘이 10년 20년 뒤와 똑같은 모습이길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만, 먼 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달라지고 싶다면 오늘 하루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하루 1/6 혹은 1/4 (4~6시간)을 잘게 쪼개어하고 싶은 일을 짧게나마 넣어서 하루를 채우는 것이다.

 10분이라도 상관없다. 

 10분의 시간이 평생 모이면 아주 큰 시간이 된다. 10분이 1년이 모이면 3650분이 되고 하루로 계산해 보면 1년간 25일 이상을 그 어떤 일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0분이라도 하찮게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단 5분, 10분이라도 해보고자 한다.


 내 인생에서 채워지면 좋을 것이 뭐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작지만 하루하루 짧게라도 그 일을 해나가 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 1분이라도 해야 그 일은 내 평생 인생에서 0.1%의 지분이라도 갖게 되기 때문에.


P.S.

 그래서 그런지 나의 하루 프랙탈 구조는 아주아주 복잡하다. 정말 사소한 것을 분단위로 쪼개 쓰다 보니 하나를 길게 집중해서 할 시간이 없다. 내 인생 전체가 아주 다양해지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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