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Dec 10. 2023

57.저는 (저와의)약속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라리 즐거운 혼자 하는 세상>


 연말이 다가오니 회식에 여기저기 식사 약속 때문에 집순이는 참으로 곤란한 마음이다.

 나의 혼자 놀기 & 쉬기 라이프가 위협받고 있다.


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혼자 즐길 줄 몰라서? 관계의 즐거움에 기대다 보니? 외로워서? 언젠가를 위한 인맥관리? 전부 다?

인맥 관리도 관심 없고 관계의 즐거움을 모르는 내가 불쌍한 인간인가?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혼자와 외로움을 잘 이겨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매 순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내 위치를 입증하고 존재의 안정감을 찾을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홀로임을 잘 즐겨내야 한다. 혼자인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많은 것을 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주변에 사람을 찾게 되고 곁에 두려고 한다.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좋은 않은 영향을 주는 관계도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이 두렵고 외로운 상태는 그 악순환을 지속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많은 관계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시간과 소중한 자신의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으로 낭비하는 것이 된다.


 어린 시절 늘 함께 해왔던 친구들은 세월이 지나서 자기만의 생활을 찾게 되면 각자 흩어지게 된다. 스스로 살아내기 바쁘므로 많은 순간들을 친구, 가족, 지인들과 함께 나눌 여유 시간이 없다.

 혼자서 위기를 이겨내고 많은 인생의 과제를 직접 해내며 하루를 살아가기 바쁠 뿐이다.


  유달리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더 바빠지고 휴식은 많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가족 포함)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고 소중하지만은 않다.

 솔직히 그 시간들이 아까울 때도 많다. 특히 감정 노동을 해야 하므로...


 차라리 집에 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몸에 휴식을 주는 편이 낫다. 혼자의 시간은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자신을 성찰하며 더욱 정신이 견고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 힘이 딸려서 타인과 불필요한 관계에 나눠 줄 에너지가 많지 않다. 나는 그 힘을 모아 다음날 회사의 일을 정확하고 깔끔하면서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가끔 회사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일 앞에서 버퍼링 걸린 표정을 짓고 어버버 하는 모습을 보면, 휴식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휴식을 동반한 일상들은 새롭고 어려운 과제가 내려질 때 이미 머릿속에서 동시통역처럼 시뮬레이션이 끝난다. 낭비 없이 행동에 돌입하여 그 일을 빠르고 빈틈없이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칼퇴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매일 즐거운 유흥으로 인맥을 쌓는 것보다 나날이 성장하는 나를 보는 게 더 흥미롭다.


이것이 홀로 즐기는 삶의 선순환이다. 일도 성장도 생활도 깔끔해진다.


 주말에도 혼자 논다.

 명절에도 혼자 논다.

 연말에도 혼자 논다.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논다.(남편이 옆에 있긴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혼자 놀고 있다.)

 논다고 표현하지만 나를 데리고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목을 위한 회식으로 단합하자고 하지만 회식 한 번으로 친해지는 것도 아니며, 회식 백번으로 친해지는 것도 아니다. 

 식사 백번과 수다 수천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 맞고 취향이 비슷해야 비로소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정서적 코드가 안 맞으면 겉치레에 불과한 식사모임에 불과해진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회식이 아니라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여 그의 취저 포인트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다. 그저 별다른 목적 없는 술자리야말로, 오히려 취향에 안 맞다면 더욱 큰 거리감으로 끝날뿐이다. 


 회식자리에서 나는 늘 '이 관계들은 정말 나와 안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차라리 몰라 버리는 게 나았을 사실들. 가십도, 정치질도 관심 없다. 불필요한 정보 과부하일 뿐. 

저런 것들을 몰라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본인이 잘 안 풀릴 때 자꾸 인맥이나 정치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객관적으로 잘 생각해 보렴~)


 설사 인맥과 정치력 때문이라고 해도 그것에 전적으로 기대는 것은 순간적인 환상에 가깝다. 이런 것들은 허상이며 이게 통하는 것은 한때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실력이다.

 인맥과 정치력도 능력 중 하나라서 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쭉 나가는 것도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저것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서 언젠가 힘을 잃게 되면 허무감에 빠질 수 있다.


 나에게는 정치력과 인맥 확장을 위해 외부로 발산하는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현실적으로 실력을 향상하는 방법은 그 에너지를 모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가 좋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인간관계와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혼자가 즐겁고 혼자가 편하다.

혼자라서 행복하냐 묻는다면, 나는 행복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마음의 평화를 찾고 육체적 휴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슈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날 피로에 절어 업무가 대충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욱 괴로울 뿐.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을 때도 행복했었던가 생각해 보면 모르겠다. 

군중 속에서 행복을 느낀 건 대학 시절 외에는 없었다. 그때야 젊어서 가능했다. 그걸 감당할 에너지가 있어서. 그리고 다음날 책임질 중요한 일 따위는 없었다. 그 시절 망해봐야 혼자 과제 못하고 교수님께 혼나는 정도였을 뿐.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은 내 일에 간섭할 것이고, 고마워할 줄 모를 것이며, 거만하고, 정직하지 않고, 질투심 많고, 무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나를 해질 수 없다."

<아우렐리우스 / 명상록>


 살면서 불가피하게 타인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마음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잘 회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에 하나하나 상처받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돌아가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살면 된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안 받는 방법은 속세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상처들이 오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초연해지는 수밖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