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10%는 나를 위해.>
24시간의 10%는 2.4시간.
즉 하루 2시간 24분을 할애해 자기를 채워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특히 우리 같은 9-6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나면 모든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이제야 자유다라며 저녁 시간을 그냥 채우기는커녕 비우기도 제대로 못하고 흘려버린다.(퇴근 후 육출하는 분께는 자유를 만끽 못하는 현실이 죄송하지만 이런 분도 몇 년 후 자신을 만드는 시간은 꼭 가져야 한다.)
사실 이 2.4의 시간들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별로 없다. 나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별달라 보이지는 않겠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매일 몇 시간이라도 나를 공부하는 것에 쓸 수 있다면 1년이 지나면 상당히 새로워지고 나아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 단 30분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잉여 시간이 있어도 대체로 텅 빈 시간채로 흘려보낼 뿐이다.
매일 자신을 위해 2시간씩 채우는 시간을 갖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의 인생은 상당히 달라진다. 이 둘의 차이는 오늘 당장은 알 수 없지만, 1년만 지나도 저 사람은 언제 저렇게 달려 나갔지? 싶을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만의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퇴근 후 식사하고 샤워하고 다음날 입을 옷만 챙겨도 금방 잘 시간이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붙잡기 위해 사람들은 휴대폰에 매달린다.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어떤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해서.(단호하게 말한다. 없다!)
그러니 휴대폰을 내려놔야 할 때다. 우리의 시간은 핸드폰과 함께 무의미하게 버려져서는 안 된다.
이런 시간은 나를 위해 채우는 시간이 아니다. 그냥 흘러가서 없어지고 버려지는 시간의 누적일 뿐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TV를 끄고, 노트북 멀리 하면 그제야 알게 된다. 퇴근 후 시간은 상당히 느리게 간다는 것을. 시간이 꽤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체감하기 위해 모든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눈 감고 5분간 명상을 해보면 된다. 아마 미칠 듯 지루하고 긴 시간일 것이다. 대체로 5분은커녕 1분도 못 채운다.
이런 전자기기는 우리의 시간을 순삭 해버린다. 그렇게 하루가 허탈해지고 만다. 그렇게 잠이 들면 마치 내가 돈 버는 기계가 된 느낌이다.
나를 채워 넣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하루,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나도 나는 달라지는 것 없이 제자리인 느낌이다. 오히려 자신이 더 낡고 퇴화하며 점점 뒤로 가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면 자신을 채우는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달린다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회사만 다니는 별 볼 일 없는 생활일 뿐.
일에서 직업적인 성장을 거두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생활 10년, 20년 하고 아직도 미숙하다면 그건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게 당연하듯, 직장인이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 디폴트 값이다. 그 이외에 다른 자신만의 무기를 뾰죡하게 만들어갈 수 있어야 앞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만 해서는 내 자아가 성장하고 인생이 앞으로 나간다는 느낌을 얻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다들 자기 일에서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며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잘하면 남들과 동일 선상일 뿐이다.(다만 못하면 아주 바닥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가끔 이런 구제불능이 있긴 함. 빨리 적성을 바꿔서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를 안 끼치면 좋겠다.)
내가 성장하고 있는 느낌을 얻으려면 존재로써 유일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야 한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만들어가는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의 공부는 평생 너무 남을 위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수동적인 공부는 남들과 겨우 같은 모습이 될 뿐이다.
남들과 같은 성적, 같은 대학, 같은 레벨의 회사를 가며 현대사회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아주 평범해지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내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고 매해 달라지는 느낌을 위해서는 이제는 남들과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저런 노력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저런 공부는 중년이 되기까지 당연히 이루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실패자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세상이 정한 기본 점수를 찾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좋은 곳에 취업할 공부는 누구나 하는 당연함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의 공부는 세상의 기준을 위한 맞춤에서 끝나버린 것이 문제다.
나를 만드는 공부가 아니라, 남들처럼 살기 위해 남이 시키는 공부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제 자신을 방치해 버리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러나 진짜 재미는 나를 만드는 공부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찾는 공부가 무엇인지 모른다. 공부 자체에 질려버려서 공부 자체를 거부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찾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찾고자 하는 공부의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 하나로써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한 공부.
흔하디 흔한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이어야 하는 그런 차별화된 나를 찾는 공부는 남들이 길을 알려줄 수 없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여러 가지 배움 중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지금 공부하는 일들에서 새로운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한 공부가 어떤 것이 됐든 계속해야, 나를 찾고 나를 만들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그 길에 들어서서도 한동안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도 있지만, 계속 걷다 보면 그 새로움은 나를 점점 빛나고 멋지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남들 하는 대로 남들 가는 대로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나다움을 찾고 그것을 더욱 빛낼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사실 회사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공부는 상당히 중요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은퇴까지 가면 나는 뭐 하고 살았나, 내 인생은 있었나 같은 허무함에 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원망을 쏟아내게 된다.
우리 주변의 친구, 가족들은 아무 죄가 없다. 그저 게으른 자신이 회사 말고 다른 공부를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방치한 잘못일 뿐...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한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시험으로 완성되는 대한민국에서 아주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정말 부모님이 원하는 기준에서 단 1cm도 흐트러짐 없이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하게 잘 살다 죽었습니다... 는 동화 얘기일 뿐이다.
이렇게 살다 30대쯤 되면 사춘기가 심하게 온다. 어릴 때도 사춘기 없이 모범생으로 부모님의 가이드라인대로만 살아온 내가 30대 때부터 사춘기가 와서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4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거리두기 중이다.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해야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남 눈치 안 보고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우울증을 통해 인생에 대한 방향을 완전히 새로 갈아엎었다.
부모님과 세상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하고 싶고 나를 달라지게 하는 것을 공부하고 도전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공부와 성취도 나를 기쁘게 하고 있고, 작은 공부들은 서로 연결되어 나를 계속하여 새로운 곳으로 이끌고 있다. 진심 요즘에야 말로 사는 게 너무 기대되고 재밌을 정도다.
과거의 나는 대체로 시큰둥하게 살아왔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이 상태에서 퇴사까지 하고 나 자신을 공부한다면 재미에 미쳐서 정신 못 차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불과 반년전만 해도 내일 당장 죽어도 아쉬울 거 없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재밌는 것이 많아서 내일 죽으면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이 재밌는 것들 다 해보고 죽어야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