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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17. 2021

13.아주 사적인 요가 수련의 이유

<우리는 모두 어떤 각자의 이유에서 요가를 찾고 있다.>


 난 어릴때 몸이 허약해서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 소극적이었다. 주변에서도 ‘에그 니가 뭘 하겠냐.’ 하면서 도움도 많이 받고 살다보니 나는 내 몸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남들보다 약하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면서 조용히 방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중학교때는 가족이 지리산 계곡에 놀러갔는데 내가 징검다리도 못 건너고 있어서 친오빠가 업어줘서야 개울을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저 내 몸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처음 요가를 시작할때도 ‘에휴 내가 뭘 하겠어. 그냥 가서 편안하게 몸이나 풀다가 와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나의 한계를 규정짓고 그저 수동적인 마음으로 시작했다.

 어른이 된 우리는 그저 매일을 반복하며 산다. 평범한게 제일 어렵다며 어제와 완전히 똑같은 오늘 하루에 만족하고 안도한다. 나도 그런 일정한 삶에서 요일의 변화 감각조차 잊으며, 일상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왔다. 평범한게 제일 어렵다는데 나는 비교적 평범한 것 같다며 평생 이렇게 무난하게 살고 싶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뭔가를 배우는 것도 해내는 성취도 빠르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편견과 거부감이 없고 자신의 한계를 미리 지정하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기를 바라며 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의 오늘은 어제보다 한 걸음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나도 어린 시절에 무언가를 배울때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나의 바램은 제발 오늘도 큰 일 없이 어제만 같아라 라는 바람뿐,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어린시절의 성장이 어떤 것인지 한참을 잊고 살았다. 


 어른이 다 되어 몸도 다 굳은 마당에 이것을 요가적으로 설명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생각보다 몸이 주는 결과는 정직하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다. 사람마다 몸의 상태나 시작점은 다르지만 분명 몸을 움직이고 어떤 훈련이나 수련을 꾸준히 해나가면, 우리 몸은 생각 이상으로 그 능력이 만들어져간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몸이 잘 만들어지고 어떤 아사나를 잘하고 같은 모습이 아닌, 내가 느끼거나 혹은 나만 알게 아주 소소하게 몸이 달라져가는 느낌이다. 육체적인 어떤 것에도 나는 아주 하수 수준에서 시작했던 내가 몸소 겪고 있는 변화이다.


 요가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어린시절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며 그 매일의 성장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을 순수하게 즐기는 느낌'이 든다. 사회에 나와 어른이 되어서 나는 어떤 목표를 하나씩 클리어 해가며 성취하는 순수한 기쁨을 느껴보기가 힘들었다. 그 성취 뒤에 오는 부담과 책임 때문이다.

 우리들은 사회에서 스펙을 쌓기위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연봉을 올리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그 올라간 자리에서는 더 많은 책임과 노력, 험난한 미래가 남아있다.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듯 사회에서 더 높고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의무와 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요가의 시간을 매일 쌓아가며 나는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그 자체의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요가에 클리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 아사나(동작)는 영원히 못할거야 라고 생각했다가 계속 반복 연습을 해나가며 점처럼 작지만 점차 그 감을 잡아가는 것을 느끼는 그 달콤한 기쁨. 요가 수련에서는 성취 이후에 요구되는 의무나 책임이 없이, 그저 성취해 나가는 달콤한 과정만 즐기면 된다. 물론 매일의 땀이 필요하기는 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제와 별다르게 안 보일 가능성도 높다. 그 변화는 나만 느껴가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기 때문에.

 요가 수련을 쌓아 깊이를 더해가다 보면 해내야하는 책임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과 함께 몸과 마음이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조금씩 올라갈수록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주는, 요가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 오히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싶다. 수련을 거듭하며 어느정도 몸에 익어 편해지면, 몸과 마음은 자유롭게 물 흐르듯 아사나를 넘나듯다.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가졌던 집착과 욕망도 아사나를 편하게 즐기게 되었을때 힘을 덜고 내려놓는 자유와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 아사나가 익숙해져서 내 몸에 편해지면 즐겁게 즐기게도 된다.


 나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잘한다고 해서 즐기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잘 하게 되면 일을 2배로 더 준다. 그래서 일을 잘 하게 되면 고통과 부담은 더 올라가게 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업무는 잘 할수록 괴로워지기 때문에 못하는 척 해야할지도 모른다. 

 아직 많은 아사나를 즐기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여러가지에서 요가의 전체적인 흐름을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요가에서는 나를 숨길 필요가 없다. 그저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즐기고 안되면 더 수련을 닦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요가를 수련해 나간다는 것은 잊고 살았던 정직한 나의 모습에 직접 다가가는 느낌이다. 못하는 척 할 필요도 없고 잘한다고 뽐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만족하고 나의 요가 시간을 더 깊이 있게 나를 솔직하게 다듬는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된다. 

 주변의 눈치를 안봐도 되고 나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시간이다. 못한다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잘 한다고 미션을 더 주는 사람도 없다. 물론 조금 더 가능성이 있을때 선생님이 챌린지의 길로 안내해 주기는 한다. 내가 앞으로 더 나갈 준비가 됐을때 그저 다시 새로운 그 길을 향해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그것은 숙제나 부담이 아니라 내가 조금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내가 요가를 수련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는 바로 성취해 나갈수록 몸과 마음을 둘러싼 모든 것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수련의 시간이 쌓일수록 무게가 가벼워진다. 아사나가 익숙해서 내 몸에 붙으면 전체 흐름을 느끼며 수련을 해나가게 된다. 물론 나는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니고 턱턱 막히는 구간에서 그 흐름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해 물처럼 흘러가는 구간이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을 기대중이다.  

 유난히 지쳤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저녁, 수련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겨우 수련을 시작해서 끝내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가 다소 심플해지기도 한다.


 이제서야 내 몸에 조심스럽게 기회를 주고 하나씩 몸이 받아들이고 있다. 중년의 몸이라고 멈춰있지 않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나가고 있다. 물론 젊은 사람들 몸의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중년의 몸에도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그 느린 나름의 속도가 있다. 


 지금은 멈추고 몸을 아낄 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소중하게 천천히 내 속도로 내가 만들어 나갈수도 있다. 그저 이 나이의 속도대로 나가면 내 모든 것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어린시절 가졌던 매일매일 앞으로 나간다는 마음도 계속 놓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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