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Feb 20. 2021

14.십인십색, 요가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

<스스로의 시간을 쌓아 답을 찾아갑니다>


 내가 하는 수련의 방법이 맞는지 틀린 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도 그저 스스로 묵묵히 수련을 쌓아가면 언젠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수련을 한다. 

 요가를 하며 생겼던 많은 의문들은 스스로 수련을 쌓아가며 질문조차 생각이 안 나게 자연스럽게 풀려갔던 부분이 꽤 있었다. 선생(이 길을 먼저 간 사람)에게 질문을 해서 즉각적인 답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 내 수련의 깊이가 쌓이지 않아 그 지혜를 내 것으로 당장 흡수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선생의 지혜를 미리 들어볼 수는 있지만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지혜들은 스쳐 지나가 버리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스로 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되었을 때야 과거의 우문현답이 생각나기도 한다. 


 요가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과 답변으로 의문을 해소한다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요즘은 나의 시간의 깊이를 쌓아 올린 뒤에야 나만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수많은 길 중에서 나에게 맞는 바로 그 방향이 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내 몸과 마음이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나에게 맞는 형태로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목표하는 지점은 있지만 도달하는 방법에서 누군가에게는 네모의 형태로 누군가에게는 동그란 형태로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어 간다. 


 빠른 질문과 답변이 지름길의 방향성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은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매번 모든 것에서 정답지로만 앞의 길을 찾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수많은 정보들이 끊임없이 들어와도 나에게 들어와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혼란스럽기도 하다. 몸이 준비되고 느끼기 전에 머리에서부터 너무 많이 채워 넣으면서 몸에서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수련의 깊이가 쌓여 내 몸이 준비가 되었을 때 그 수많은 조언들은 내 머릿속과 몸에서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작동되리라 기대해 본다.

 

 내 수련의 깊이가 그 답을 받아들일 상태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수많은 조언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는 힘들었다. 늘 정확하게 결론 내리고 A는 B로 정리하고 싶은 내 성격에 이런 요가의 길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도 상당히 새롭다. 

 내가 찾는 답은 지금 여기에 없을 수도 있고 멀리 앞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 어느 먼 미래에 만날 수도, 못 만날 수도 있는 애매하고 미완성인, 그러나 진행형인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조차 요가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요가는 완성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 바람 같기도, 물 같기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여기는 없는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처럼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멈춘 곳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더 앞쪽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가가 거기 있고, 시간도 그냥 거기 있고, 그저 내가 그것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답을 내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답을 찾아나가는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 바로 요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를 정답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그 수련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항상 어떤 표준과 정답에 나를 꾸깃꾸깃 끼워 맞추는 모습으로 살아왔다. 세상의 정답지가 네모면 나는 네모가 됐다가 정답이 원이 되면 동그랗게 됐다. 하지만 요가에는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맞출 수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몸이 다치거나 내 몸이 그 수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상황들이 다양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한 가지로 방향과 답을 내릴 수 없는 이 길에 그저 매일 나의 수련의 깊이를 쌓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가는 거기 있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그것을 통과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유기적인 요가는 통과하는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갈지도 모른다.


 예전에 들었던 수많은 조언들은 내 무의식 어딘가에서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내가 비로소 내가 어떤 준비가 되었을 때야 무릎을 치며 그게 이 말이었구나 깨달으며 나에게 오기도 한다. 수련과 공부의 시간을 더해 가며 그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해 실천해 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그 순간, 나만의 형태로 그곳으로 향해 가본다.

 사람의 몸이나 상태가 모두 다 다르기에 일반적인 길이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답과 길을 제시하기는 힘들다. 보편적인 목표나 기준을 기억하며 그곳을 향하는 길은, 나의 수련의 여정을 통해 혼자만이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내가 잘 안 되는 어떤 아사나가 있다면 타인은 그 모든 정답 과정을 알려주지 못할 수 있다. 완성된 형태나 움직임의 효율과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내가 몸을 통제하며 호흡, 방향, 속도, 미세한 각도까지 내가 조절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몸의 작용은 내가 찾아내야만 할 수도 있다. 

 자주 하는 비유이지만 배가 고플 때 타인은 메뉴를 골라줄 수는 있지만 나 대신 밥을 먹고 대신 배불러 줄 수는 없다. 그 밥은 내가 씹고 삼켜서 먹어야 내가 스스로 포만감을 느끼고 영양을 흡수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의 방향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유연해지려고 하고 있다. 같은 몸의 내 상황 안에서도 내가 오늘 추구하는 수련의 목적이나 방향, 컨디션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지속할 수 있고, 조금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매일 조금씩 다르게 수정하고 적용하면서 수련의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정답이 없는 길이기에 내가 수련을 쌓아 가면서 길을 찾아가면서 또는 그 길을 수정해 나가면서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요가의 길인 것이다. 


 그래서 요가를 하는 사람이 열명이 있다면 십인십색 다 다른 수련의 길이 되는 것이다.

 정답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요가 여정을 즐겨 나가면 어떨까. 나의 수련으로 요가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자기만 가질 수 있는 멋진 요가의 색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3.아주 사적인 요가 수련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