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달콤한 충동적인 휴가결정>
갓생도 피곤하다. 얼래 벌래 한 주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기가 어려울까?
직장생활이 18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도 이러는 나도 참 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심약한 나는 월요일 출근길부터 무섭다.
무례한 동료, 긴급한 업무 생각으로 이미 지쳐버렸다.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다.
일이 싫은 것이 아니라 타인의 무능과 무례에 시달리는 것이 너무 괴로운 요즘이다.
사실 나는 선천적으로 일을 몹시도 사랑한다.
주변에서 말리지 않으면 일 중독이 됐을 성격이다. 한때 일중독이었다가 벗어나 워라밸을 찾는 삶을 살고 있다. (학창 시절엔 잠도 안 자고 공부해서 부모님이 뜯어말렸고, 요가를 할 때는 집에도 안 가고 위험한 아사나를 계속 연습해서 강사님이 나를 집으로 귀가시켰다. 골프를 칠 때는 레슨 강사님이 좀 쉬다가 하라고 휴식 시간을 1분씩 의도적으로 줄 정도로 멈추지 않는다. 그냥 나는 무식하게 불도저로 살아왔다.)
남은 나처럼 일할 수 없다. 자꾸 내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하는 중이지만, 어지간이 기본은 해야지 정말 개념을 상실하고 실력이 바닥이 사람이 꽤 많다. 내가 사장이면 그런 애들에게도 월급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분노스럽지만 나도 일개 직원이다.
내가 사장은 아니라 내 돈을 월급을 주느라 쓰진 않지만, 그런 무능&무례를 탑재한 애들이 못하는 일들을 대신 처리하는 몸빵으로 직장생활에 임하고 있다.
사장은 헛돈 쓰고, 타 동료 직원은 몸빵 하고. 무능한 그들에겐 상사가 일도 안 시킨다. 정말이지 자유로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부럽진 않다. 그런 존재야 시간이 지나 봤자 전혀 남는 게 없을 대충이 습관화되고 남의 노력에 편승하는 그야말로 낭비하는 삶일 뿐이다. 나이 들어서는 세상 탓 하며 삶이 허무하고 인생무상이다 헛소리 할 인격이다.
분노스럽지만 원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파레토법칙은 회사에서도 통한다. 회사의 80% 성과는 20%의 직원의 성과에서 나온다. 나머지 80% 직원은 빈둥대며 자리만 지킬 뿐.
알면서도 화나는 것은 아직 나도 도를 덜 닦았기 때문이다. 본질을 꿰뚫어 볼수록 화가 난다. 남들보다 상황 분석을 잘하기 때문에 속으로 2배 3배 더 화가 난다.
인성, 능력, 성실함 중에 하나만 있어도 동료로서 용서하고 품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 세 가지 모두 상실한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내 삶에 도전을 받고 있다.
진정 혼자 일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늘 당장 사표를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월요병을 극복하기 위해 갑자기 화요일 휴가를 냈다.
주변에서 놀러 가냐고 했다. 아니다.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결정한 일이다.
화요일 휴가. 뜬금없다.
보통 사람들은 월요일 휴가를 쓴다. 그러나 그렇게 쉬는 월요일은 크게 빛나지 않는다. 이미 주말부터 쉬어온 늘어짐의 관성이 이어질뿐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월요병이 싫어서 월요일 휴가를 냈더니 월요일도 괴롭고 화요일 출근이 월요병 2배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일요일 저녁부터 출근이 괴롭듯이 일요일이 2번 있는 느낌이 월요일 휴가랄까.
그래서 차라리 화요일 휴가를 냈다. (수요일 휴가도 괜찮다. 그러나 내 정신 상태가 수요일까지 버틸 수 없다고 저항했기에 어쩔 수 없이 화요일 휴가를 선택했다.)
화요일 휴가는 어제(월요일) 근무한 뒤 얻게 된 달콤한 휴가다. 게다가 월요일 출근 전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선물 같은 날이다.
괴로운 월요일 출근길은 내일 휴가 1일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를 상상하며 비교적 괜찮은 시간이 된다.
출근 후에도 내일 휴가니까 견딜만하다. 이렇게 즐거운 월요일, 즐거운 화요일을 마치면 순삭 수요일이 되어있다.
얼래 벌래 일주일 반에 접어들었다.
심지어 화요일 휴가를 상상하며 일하니 월요일 업무는 상당히 순조롭고 집중이 잘 되어, 다음날 휴가를 취소하고 일이나 더 할까 고민까지 했다. 바로 어제였다.
그러나 예정대로 나는 화요일 휴가를 냈다.
평소처럼 4시 30분에 기상하여 에스프레소를 한잔 내려 마시고, 읽던 책을 완독하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뒤에 골프를 1시간 20분 치고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이다.
이 회사는 휴가라고 봐주는 것이 없다. 9시면 어김없이 내 전화통은 울려댈 것이다.
P.S.
남의 노력에 편승하는 대충이들 때문에 분노한 걸까?
요새 나의 분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태생적으로 굉장히 성실하다. 신이 나에게 유능함은 주지 않았지만 성실함은 주었다. 안타깝지만 마냥 슬프진 않다.
(유능하지 못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삶이 조금 고달프긴 하다. 모든 것을 남들 이상으로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성실함만 있어도 이 세상은 은근 상위권으로 살 수 있다. 성실조차 안 한 사람이 수두룩 하기때문에)
천부적으로 타고나서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남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노력하고 뼈를 깎아 나를 녹여내야 겨우 얼추 꽤 잘하는 반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력의 양으로만 보면 전국권이지만 현실은 보통인들보다 살짝 잘하는 정도이다. 프로 앞에서는 후지고 아마추어 중에서는 꽤 잘하는 어정쩡한 보통 인생.
그래서 실력도 없는데 성실함도 없는 변명쟁이들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것을 최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별 드러운꼴 안 보려면 그냥 나 혼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필 오늘 아침 읽은 책도 '좋아서 혼자서'라는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생각보다 머지않은 미래에 진짜 혼자서 일해야 이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무능하고 무례한 인생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괴롭다. 저런 건 모르고 싶은 인생이다.
너무 잘나서 질투가 날 정도로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만 만나고 싶은데, 저런 하류의 사람만 보면 우월감은커녕 짜증만 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저런 애들이 판을 치나 싶어서.
세상엔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삶이 있겠지만, 절대로 곁에 두고서 알고 싶지 않은 삶의 스타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