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불안을 이용하기로 했다. 고마운 녀석이다.>
나의 성실함의 베이스에는 지나친 불안감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성실하지 않거나 게을러 보이는 사람은 불안이 적고 편안함(만족감)을 쉽게 느끼는 사람이다.
불안을 자주 느끼는 것은, 예민성처럼 타고난 기질이라 노력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불안을 없애는 것은 표기했다.
오히려 이 불안증을 역으로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 삶에 있어서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평온한 감정만큼 자연스러운 디폴트값이다.
살아오는 많은 기간 동안 이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을 소비했다.
나는 불안을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불안하고 예민한 기질은 나쁘고 무사태평 평안한 성격이 무조건 좋은가?
그래서 불안의 장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실제 이 불안한 감정을 이용해 꽤 어려가지에서 이득을 얻었다.
어차피 이 불안을 없애기는 어렵기때문에 불안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이었을지 돌아봤다.
앞으로도 이 불안은 벗어나기는 힘들고 평생 친구처럼 데리고 다녀야 할 감정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과 예민성은 노력으로 없애기가 어렵다.
타고 난 유전자의 프로그래밍 같은 기질이다. 아주 조금 완화는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는 쉽지 않다.
무딘 사람도, 평안해 보이는 사람도 그저 타고난 기질이 그런 것이다. 참으로 부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평화로운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내려놓고 삶의 전체 흐름에서 이 불안함을 잠식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많은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호흡이나 명상으로 잠시 감정을 다스릴 순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을 행동으로 이어가서 어떤 결과나 대책이 생겨나야 비소로 불안이 조금씩 완화되었다. 불안을 없애기는 어려웠지만 해결하는 것은 어떤 행동과 움직이었다.
불안이 정신적인 생활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단점만 가득해 보이지만, 오히려 삶의 많은 과제에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기특한 감정 리소스가 아닐 수 없다.
불안의 에너지는 행동으로 치환하기가 쉽다.
평화로운 때 오히려 새로운 도전과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불안 가득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등 떠밀리듯 새로운 과업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
최근 골프레슨을 시작하면 골프에서조차 불안증이 가중되고 있다.
레슨이 잡힌 날을 하루종일 안절부절 불안하다. 잘 못하니까 레슨을 받는 건데 못하는 상황, 레슨 프로님의 지적&짜증 등 여러가지가 두렵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연습한다. 이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레슨 받기 전에는 몸소 칠때만 연습을 했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따로한 적은 없었다. (많은 운동 선수들이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실력 향상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사례도 많다.)
레슨 갈때마다 혼나기 보다는 일취월장 하는 모습으로 프로님께 자랑을 하고 싶다.
실력과 결과가 좋아지는 것은 좋지만, 역시 이 불안증은 나의 생활을 괴롭게 하는 정서는 맞다. 인정한다.
그러나 부지런과 성실함의 베이스엔 늘 불안이 연료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인 어떤 일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이유는 대체로 하기 싫어서다. 이것은 대부분 심사숙고라는 이름의 변명을 달고 있다. 그러나 하기 싫어서 보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미루는 행위는 위험 감수를 하기 싫고 번거롭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데 진화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진화과정에 따르면 위험을 감수하고 늘 새로움에 도전했던 선조들은 대부분 빨리 죽었고 그 호전&도전적인 유전자를 후대에 전파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유전자는 게으르고 안전을 지향하는 평화주의자가 우세하다.
주의 깊게 상황을 판단하여 보류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안전지향을 했던 유전자가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유전적으로 안전지향, 변화거부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 유전자에는 당연히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귀찮은 걸 거부하고 기존의 방식을 선택하는 형태로 살아가기 쉽다.
우리 선조들이 변화를 선택할 때는 자연재해 같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뿐이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대체로 게으르고 기존 방식대로 사는 유전자이지만 불안증이 높은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과 도전을 한 세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불안타파는 노력으로 없애기 어려웠다.)
선조들은 자연재해라는 불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로소 변화를 시도했다. 불안을 받아들이고 도전적인 행동을 했다.
현대사회는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의 불안이 없다. 그래서 이 불안을 현대사회에 맞춰 역이용할 수 있다.
불안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행동을 하는 에너지로 사용한다.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새로움에 대응하게 하고, 변화하여 앞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등을 떠밀게 된다.
과거에는 불안한 상황에서 행동과 변화를 멈추면 생명을 잃었다.
그래서 현대에 있어서는 불안함이 어떤 행동을 하고 움직이게 하는 저력과 동기부여가 된다.
세상 편한 성격이었다면 제자리에 멈춰서 여유와 휴식을 통해 인생의 낭만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려운 기질이라 불안을 등에 엎고 달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롭길 바라면서 한편으론 안빈낙도하며 제자리에 멈추는 무딘 정서로 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다. 예민하고 피곤하게 살거나 무디고 평화롭게 살거나.
불안한데 평화로운 삶은 모순이다.
둘 다 가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P.S. 1.
매사에 불안감이 높아 상당히 피곤한 인생이다.
지금이야 이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노이로제와 예민성, 까탈스러운 성미로 느긋하고 즐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늘 많은 일을 하며 불안함을 달랬다.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하다. 이유 없는 불안이다.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행동으로 이어 가다 보니 많은 일들을 해볼 수 있었다.
불안이 높아서 잠을 얕게만 잔다. 그래서 피로도가 높고 생활에 쓸 에너지가 낮다 보니 에너지 효율을 위해 내성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집순이로 살고 있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는 많은 것을 도전하는 것에 쓰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알람시계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는데, 너무나도 예민한 나머지 알람시간 전에 늘 정신이 깨고 만다. 잠을 아주 얕게 자기 때문에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그렇게 자 본 적이 없다. 고양이 발소리에도 깬다.
예민함은 알람 없이 기상할 수 있게도 하고, 생활을 피곤하게도 한다.
일장일단.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다.
불안이 삶의 저력이 되니 상당히 갖고 싶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마음 편히 살는 것이 장땡이다. 불안증이라는 이 기질을 바꿀 수 없기에 나름 장점을 발견하고 활용하고 있을 뿐.
평안하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그린 수많은 글들, 그런 생활들은 사실 내가 몹시 꿈꾸고 바라는 것들이다.
P.S. 2.
불안과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서 '배치플라워'라는 동종 요법을 공부했다.
이유없는 불안을 위해 자주 먹는 배치플라워는 Mimulus 미뮬러스 이다. 여러가지 블랜딩으로 먹기도 하지만 즉각적으로 단일 형태로 복용하기도 한다.
막연히 불안에 빠져있지 않고 나를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공부를 했고 이 지식은 주도적으로 나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방법들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