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다.>
행복을 글로 정의하기는 쉽지만 정신적으로 이르기가 쉽지 않고 행복을 느낀다고 해도 아주 찰나에 스쳐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다.
행복만을 목적으로 산다면 행복을 내내 갈망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현재를 무의미하게 생각하기 쉽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게 된다면 평생에 걸쳐 우리 인생의 많은 시간은 행복한 총합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다.
행복과 불행이 아니라, 안 행복하고 안 불행한 중간 상태도 있다. 내가 지향하는 점이 딱 이 지점이다. 황홀한 행복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무덤덤하고 별일 없는 일상의 감정.
스쳐 지나가는 실체 없는 행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냥 매일을 원하는 형태의 순간으로 시간을 채워가면 된다. 이런 상태에서 행복을 못 느낄 수는 있지만 충만한 하루를 느낄 수 있다.
극단적인 정신의 희열 상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루하루 평온한 마음을 이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무탈한 생활이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행복보다는 만족에 가까운 감정이다. 억지로 행복한 척 행복의 틀에 이 감정을 끼워 넣고 싶지 않다.
그냥 남들 보기에 무심하고 심심해 보이는 그런 인생이다. 나는 참으로 소소하고 재밌다.
사실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 감동과 흥분에 빠지는 순간이 행복이라면 그런 경험은 내 생에 별로 없었다.
결혼식을 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타인들의 눈에는 감동과 희열에 빠진 행복한 신부로 보였겠지만, 그것은 문화적인 해석일 뿐이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고 피로했다.
사랑하는 남자와 가족이 되는 것을 세상에 공표하고 허락받는 기쁜 날이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행복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빨리 끝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세상이 나에게 행복 프레임을 씌웠기 때문에 행복한 신부였지만, 정작 내 감정은 행복을 모르고 지나간 날이었다. 그렇게 보면 행복은 내가 느낄 때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줄 때 만들어지는 허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행복은 결심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고,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찰나의 순간 느꼈다고 영원히 소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평화롭고 별일 없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규칙적으로 살면 재미가 없어 보인다. 삶에 예측불가한 이벤트는 없다. 내 손 안에서 컨트롤되는 상황을 보며 만족스러운 하루를 마무리할 뿐이다.
이런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극적인 행복의 감정 보다 더 좋다.
이 평온함은 지속성이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정신에 강타하는 강렬한 행복보다는 쭈욱 지속하고 간직할 수 있는 평화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 삶의 전체로 보면 더 만족도 높은 생애로 느낄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모든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면서 안행복과 안 불행의 상태로 살기를 희망한다.
요가에서는 나의 감정상태(슬픔, 불행, 긴장, 스트레스 등)를 인지하고 흘러가는 대로만 두어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 그냥 인지하고 흘러가게 두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중립 상태가 행복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행복은 모르겠고,
자기의 감정을 적절히 다스리고 습관을 잘 유지하며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하루하루 쌓아갈 때 지속적인 만족과 평화가 따라오게 된다.
어쩌면 인생전체로 보면, 그 순간을 살아낼 때는 몰랐지만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추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S.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이유가 뭘까?
잘 모르겠다. 안 불행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순간적인 희열과 감동을 위해 쇼핑을 할 뿐이다. 쇼핑을 하고 원하는 물건을 득템 하면 엄청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나온다. 이 호르몬 반응을 행복이라고 정의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처구니없는 해석이므로 그냥 오늘도 안행복, 안불행한 상태로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