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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Nov 11. 2023

40.소심을 다하겠습니다.

<얇고 길게 지속가능한 요가인생>


소심해서 늘 제자리인 모양.

넘어져야 앞으로 한발 나갈 수 있다지만 좀 살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삶은 대담하게 선택하고 살면서 요가에서만 참으로 살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일에서는 힘을 빼지 않는데 요가를 할 때는 힘을 빼고 한 호흡 물러난다.


 매사 저력을 다해야 한다면 인생이 너무 지친다. 요가라도 좀 편안하게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볍게 해 봐도 되지 않을지?


 미안하지만 요가에선 소심을 다해 보겠습니다. 


 회사에서 오늘도 많이 치이고 넘어졌다. 너무 지친 나머지 요가매트에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매일 요가를 하니까 이제 무의식적으로 척척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당연히 나타난다. 대체로는 큰 고민 없이 할 때가 많지만, 그렇게 순조롭게 하는 것 같아도 한 번씩 꾀가 난다. 

 게으르고 용기가 안 나는 날. 다 귀찮다. 그래 부담 없이 쉽게 가자~ '너 대회 나갈 거니? 그냥 일단 해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달래며 요가매트에 선다. 이 위에서 만큼은 도저히 넘어지고 싶지 않아서 조심조심 몸을 사리다 보니 당최 다음을 향해 나아가지지가 않는다. 

 실패한 아사나를 계속 곱씹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 다음 단계 성취에 욕심이 있나 보다. 부인하기 힘들다. 


 업그레이드는 하고 싶고 몸을 던지는 과감한 도전은 무섭다. 무섭지 않게 성공해 내는 법은 없겠지. 넘어지지 않고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들겠지.


 과감하게 넘어지면 1의 시간을 들여 해낼 수 있겠지만, 많이 아프다.

 소심하게 넘어지지 않고 살살 가면 10 이상의 시간이 들겠지만, 자연스럽고 아프지 않다. 다만 오래 걸린다.

 과감하고 빠르게 혹은 소심하고 느리게. 편한 대로 선택하면 된다.


 무섭다는 것은 아마 내 몸이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해내게 된 아사나를 할 때, 지금은 전혀 무섭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지금 공포부터 느껴지는 아사나는 내 몸에서 아직 받아들이기 이르다는 것을 안다.

 사회에서 이럴 때는 보통 무조건 도전을 한다. 그리고 무조건 해낸다. 70%만 준비되어도 일단 과감하게 나를 던져서 부딪히며 나머지를 완성해 냈다. 그러나 그게 요가에서만은 잘 안된다. 무섭다. ㅠㅠ

 과감하게 몸을 던져 당장 해내거나, 소심하게 천천히 가거나. 나는 후자다.


 요가 수련에서 과감함과 안전주의는 종이 한 장이다. 무섭고 안 될 것 같아 미처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이제 할 수 있겠다며 도전을 시킬 때 수월하게 해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역시 수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수적인 태도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혼자 수련을 했어도 부상 없이 안전하게 해 왔다.


 물리적인 시간은 아주 충분히 흘렀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섭다. 

 지금이 용기를 내야 할 타이밍일까? 전혀 모르겠다. 물러서고만 싶다.

 사회에서 늘 소심하게 변명하고 물러서는 사람을 한심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요가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겸손함이 절로 생긴다. 요가를 안 했다면 나는 상당히 오만방자하게 살았을듯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몸이 조금 덜 완성됐다며 늘 주저한다. 오늘도 조금 더 다리를 차올리는 도전은 하지 않는다. 몸이 허락하는 선에서 무섭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한계를 유지하며 수련을 마친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소심을 다하는 수련을 하고 있다.


 가끔은 용기를 먼저 내서 몸을 조금 더 푸쉬해서 앞으로 한발 떼어봐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크게 여러 차례 넘어지는 과감한 도전과 실패가 거듭됨으로써 향상과 개선에 빠르게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대담한 도전이 두렵다. 나는 아프기 싫다. 핸드 스탠드 뒤에 벽이 없다면 과감하게 올라갔다가 온 등으로 바닥에 착지하고 싶지 않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소심이 나쁜 것일까??


 안정성을 선택하는 보수적인 방법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안정된 도전만 아주 살살하는 것을 야망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아야 할까? (미안하다. 이런 걸 비난했던 사람이 나다.)


 소심은 포기와 다르다. 

 소심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가고는 있다. 개미처럼 걷고 있기에 아주 미미하게 움직일 뿐이다.

 내 요가는 바로 이렇게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최근 요가 선생님들과 만나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내가 요가 티처트레이닝을 참여하던 시절, 심사를 했던 선생님께

 "3년 전이랑 지금 이랑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풉!'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 핸드폰에 저장된 3년 전 수련 영상 보여드려요?"그녀의 대답에 흑역사가 어렴풋 떠올랐다.


 매일 개미처럼 움직이다 보니 내가 걸어온 세월의 길이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매일 폭식할 때 살이 찐 줄 모르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더니 왜 이렇게 살이 쪘냐며, 내가 인지 못한 상황을 타인을 통해 들을 때처럼.


 나는 소심을 다해 매일 걸어왔다.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고 안전하게.

 그러나 멈춰서 돌아보면, 그래도 이전과 같은 자리는 아니었다. 빠르지는 않지만 나는 움직이고는 있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비법은 출발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누구나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기에 생활에서 수많은 도전과 과감한 선택을 한다. 철저하게 효율로 움직이고, 고민으로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나는 포식자처럼 움직임에 낭비가 없다. 게다가 상당히 빠르게 집중하여 쟁취한다.


 우리 사회구조는 원래 공격적인 투자로 위험을 감수하지만 빠르게 이익을 얻거나 안정적인 투자로 손실의 위험을 줄이고 천천히 현재의 속도로 가거나 둘 중에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흘러간다.


 이런 선택의 문제에서 우리는 소심하게 행동한다고 한들 한심하게 평가받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가치관대로 선택한 속도대로 살뿐이다.


그런데 요가에서 만큼은 나 스스로 고뇌에 가득 차 있었다.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나는 속도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배포 작은 나는 매일 수련을 통해 조금 아주 조금 보일 듯 말 듯 나아지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과감한 한 방이 두렵고 무섭기 때문에, 넘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혹시 다치진 않을까? 고민하며 오늘도 소심한 수련을 하고 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얇고 길게 지속가능한 요가 인생이다.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 90세에도 요가하는 할머니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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