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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Nov 12. 2023

41.시간을 거꾸로 먹는다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못하는 일이 늘어나기보다 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다시 돌아가면 몇 살로 가고 싶은지 얘기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결혼 전으로, 출산 전으로, 대학시절로, 찬란했던 과거로 돌아가 상상의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현재에 엄청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되기 위해 그 고생스러운 인생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매 순간 대체로 후회없을(?) 선택을 했다. 후회스러웠다고 한들 바로잡기 위해 더 노력했으니, 후회 0%를 지향하기 위한 삶이 참 피곤했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못 가진 선택은 잊고 내가 가진 선택에 최선을 다해 있어 보이게 만들어냈다. 아마 다른 옵션을 선택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후회 없을 결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몹시 고생스럽게 인생 2회차를 만들고 싶지 않을 뿐. 한 번으로 족하다.

 내게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를 선택해도 힘들게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인생일 뿐이다.


 물론 내게도 낭비해 버린 시간과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었지만 그 뒤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느라 더없이 괴로웠다. 도무지 나에겐 과거가 미화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이다.

 게다가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흑역사는 어떠하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를 거듭하며 점차 현명해지고 능숙해진 지금이 더 나을 뿐이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젊은 외모밖에 없다.


 얼마 전 후배들과 점심시간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우연히 요가 다리찢기 얘기가 나왔다. 요가 때문에 내 인생이 많이 바뀌었기에 이 얘기만 나오면 참 할 말이 많다.


 난 인생의 많은 순간에 선배들로부터 "너도 이 나이 돼 봐. 힘들어.", "너도 나이 먹으면 에너지 딸리고 열정 없어진다." 라거나 "나도 2~30대엔 꿈도 많고 날아다녔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20대는 정작 살아내느라 바빠서 매사에 열정적이고 꿈이 넘치며 날아다니지 않았다. 암담할 때도 있었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자꾸 니 나이땐 다 할 수 있다며 아랫사람들을 다그쳤다.

 그들의 과거 기억이 상당히 미화된 것은 아닌지, 사실 20~30대에 확신에 차고 만족스럽기는 꽤 어렵다. 그건 40대도 마찬가지지만 20대에 비해서는 안정을 찾게 된다. 물론 그 시절의 투자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다행히 막막한 가운데 나는 뭔가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아주 조금 안정적인 느낌을 얻게 됐다.


 카페에서 나의 다리 찢기(하누만 아사나) 사진을 본 후배들이 "어떻게 할 수 있냐. 나는 태생적으로 뻣뻣해서 못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한 대답을 하게 되었다.

 "나도 여러분 나이땐 다 못했어요. 지금부터 시작하면 이 나이 되면 다 돼. 다 할 수 있어. 나는 20대 때 더 뻣뻣했다니깐." 

 이 무슨 반어법인가?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긴 했다. 내가 선배들로부터 듣던 말과는 달랐다.

 내 나이 되면 너도 못해가 아니라 내 나이 되면 너도 다 할 수 있어. 심지어 '너희들은 내가 처음 했던 나이보다 어리니까 훨씬 더 잘할 수 있지.'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시간을 거꾸로 먹는 화법이다. 나이가 들수록 못하는 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탁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사실 아직 내겐 그런 선배 롤모델을 못 만나서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없으면 어떤가? 내가 그런 롤모델이 되어보지 뭐.


 지금 못하고 부족한 너를 책망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너는 나보다 더 잘하게 되고 너의 중년도, 노년도 훨씬 멋져질 거라는 걸. "지금 못해도 괜찮아. 봐봐~ 나도 하잖아. 40대에도 더 나아질 일 밖에 없다니까?"


 내가 요가를 처음 시작한 건 30대 중반이었다. 나는 우울증이 있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다. 당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거 같다. 삶의 방향에는 관심 없고 생활이 무기력했고 좀비처럼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일단 살아는 볼까라는 마음에 별 뜻 없이 요가에 입문했다.


 우연히 시작한 요가가 나를 매해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 몸만 만드려고 했는데 마음이 다져지고 있다.

 겨우 요가가 무슨 인생을 변하게 할까 싶지만, 요가가 아니더라도 몸을 먼저 단련하면 사람의 사고 체계가 상당히 달라진다.

 여러 신체 감각들을 몸에 익히고 나면 우리는 실제로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된다. 

 뭔가 강단 있어 보이고 단단한 사람 중에 자신의 몸을 못 다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성공하거나 부를 획득한 사람 중에 운동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육체를 관리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은 참으로 단순하게도 몸의 지배를 많이 받고 있다. 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생각이나 가치관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일이 두려울 때,

루틴하고 하찮은 일상의 일이 귀찮을 때,

주저하고 미루는 상황에서 의지박약인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새롭고 귀찮은 일을 대할 때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의지력은 몸이 만들어져서 정신을 잘 받들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별거 아닌 일상 속 자신과의 약속을 잘 깨지 않는가?(내 남편만 봐도 그렇다. 요가를 안 해서 니가 그렇게 나약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음.)


 중년이 되어 꿈이 사라지고 삶이 무료하거나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려운 이유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삶에서 핑크빛 순간과 햇살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체가 상당히 지쳐있기 때문이다.

 몸에 에너지만 충분해도 세상은 희망차게 보인다.


 그래서 체력을 만드는 것은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신체에 에너지가 있어야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얻고 귀찮을 일상의 일을 해내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대단한 일로 만족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라도 미루지 않고 내가 결심한 대로 잘 처리해 낼 때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유지된다. 이 만족은 평화로운 느낌과 더불어 매해 나를 더 나아질 수 있게 가꾸는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늙어가는 내가 무섭지 않다. 

 오히려 50대가 되면 얼마나 더 건강하고 많은 것을 도전하고 해낼지 설레고 기대되기만 한다.

 요즘 도전하고 있는 나타라자아사나(춤의 왕_요가 자세)도 50대쯤 성공하지 않을까?


 요가에서 원숭이자세(하누만 아사나)를 성공한 건 30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수년간 연습하여, 양손을 땅에서 놓고 하늘까지 두 팔을 뻗게 된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매해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세가 늘어나고 디테일들이 추가되어 아사나가 디벨롭되고 있다.


 흔히 나이가 들어서 더 못한다고 하거나 이 나이에는 늦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나이대에도 꾸준히 앞으로는 나아가게 된다. 10대에 발레를 시작한 친구들만큼 해내기는 어렵겠지만, 지금도 내 몸은 매해 달라지고 있다.

 

게으름은 사실 몸의 허약함이며,

정신의 나약함 역시 신체의 나약함이 마음으로 이어진 결과다. 게으름? 나약함? 별거 아니다.


 지금 일어나서 내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면, 후배들에게 "어휴 너도 내 나이 돼 봐. 아무것도  못해."라는 자조적인 발언이 아닌,

"그 나이엔 못할 수 있어. 그러나 제 나이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발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멋진 선배 롤모델 되기 상당히 힘드네 ^^



 요가에서 아사나는 수행 단계 중 하나일 뿐이다. 

요가경전 [요가수트라]의 8단계 수행과정 중에 아사나(현재 우리가 요가라고 부르는 육체수련)는 세 번째 단계일 뿐이다. 

 아사나는 다음 단계인 명상을 위해 준비하는 육체 수련이다. 정신수련을 위해 육체 수련이 선행되어야 함은 요가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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