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가 나를 더욱 성장하게 했다.>
고백한다.
사실 나는 독서를 싫어한다.
독서를 꾸준히 하는 편이지만, 독서자체를 즐겼다고 볼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서를 즐기며 사는 인생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독서가 너무 귀찮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었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꽤 싫어했으면서 열심히 해올 수 있었던 저력은 단연 '허세와 허영'이었다.
맞다.
허세도 잘 쓰면 진정 삶에 원동력이 된다. 지금의 나는 허세력이 밑바탕 되어 만들어 올 수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즐겼던 건 어른들의 칭찬들이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할 때 어른들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그런 것도 아냐며 칭찬하는 그 말에 거의 중독되어 있었다. 자매품으로 "너 굉장히 영리한 아이구나."와 "너 똘똘하게 생겼구나."를 즐겼다.
나는 그 '잘난 척'을 위해 엄청나게 독서를 했다. 독서자체를 전혀 즐겼던 것은 아니었다.(난 만화책을 더 좋아했다.)
그저 "너 진짜 똑똑하다." 이 한마디를 더 듣고 싶은 열망이 있었을 뿐이다. 영특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만화책만으로는 안된다. 세상살이의 실용과 상관없는 우주 얘기나 과학에 대한 이슈를 꺼내야 한다. 그렇게 다독이 생활화 되어 갔다.
나는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허영과 허세력이 가득한데,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지식과 교양 뽐내기'였다.
쇼핑과 외모 꾸미기와 고급스럽고 세련된 취향 만들기, 남들이 안 하는 절제된 식욕과 채식 실천하기, 환경을 공부하며 기부하기나 봉사하여 의식 있는 사람인척 등은 모두 허세력에 기반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수많은 허세 중 '스마트하고 지적인 인간'되기 미션은 단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데, 수많은 세월 동안 독서와 공부를 병행해야 완성되는 상당히 번거로운 장기 프로젝트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식에 대한 허세는 나를 더욱 건설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줬다.
그저 어른들에게 칭찬받고 싶고,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고 싶어서 공부한 책들이었는데, 읽은 지식들을 뽐내고 자랑하며 말하다 보니 수많은 정보들이 내 뇌 속에 피드백으로 되돌아와 오래도록 기억되고, 정보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어 더 많은 나만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적 허세는 독서로 실체화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집에 있는 백과사전 12권 세트와 10권 세트, 22권을 한 번씩 다 훑었다. 졸업까지 수회차 반복하며 읽었다. 수많은 과학, 우주, 자연생태계에 대한 지식이 허세에 대한 열망 때문에 차곡차곡 쌓였던 시간들이다.
아무리 재미없고 어려운 책도 매일 조금씩 한두 장이라도 읽으면 결국 다 읽어낼 수 있다는 끈기도 연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으로 '집념과 승리'를 배운다면 나는 독서로 이것을 배웠다.
같은 내용을 N회차 반복하며 내 지식으로 책 씹어먹기를 하는 습관은 입시 때도 도움이 되었다. 교과서 10 회독은 문제집 수십 권 푸는 것보다 중요했다.(응용보다 역시 기본개념서 이해가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비록 허세로 시작한 책 읽기지만 인생 전반 여러 상황을 직면할 때 이 독서 습관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책으로 얻은 것은 지식자체뿐만 아니었다. 조금씩 한 장씩 넘기면 언젠가 완독 하는 책을 보며 어려운 상황을 다루는 태도와 마인드를 체득했다.
어릴때 어렵고 재미없던 백과사전을 읽는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읽어가듯 해나가면 결국 어떤 일이든 언젠가는 끝마칠 수 있다는 진리. 그렇게 많은 순간에 하기 싫은 일들을 꾸역꾸역 느리지만 꾸준하게 해올 수 있었다.
독서를 했으니 자랑을 해야 했다. 나에게 잘난 체가 없다면 독서는 역시 쓸모없는 일일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고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다 보니 내 지식은 하이퍼로 연결되며 더욱 견고하고 다층적으로 발전되었다. 역시 지식은 혼자만 공부해서 아는 것보다 남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게 됨으로써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지식의 통섭은 허세력 때문에 더욱 견고해졌다.
공부한 지식을 남들에게 말하려면 곱씹어야 하고 내가 가진 정보들과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가지를 뻗어가듯 비어있는 곳에 새로운 지식을 다시 채우고 견고한 가지로 만들어간다.
이렇게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지식들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은유와 비유를 통해 내 전공 강의를 만들었다.
대학 강의는 내 지식의 폭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아니라 내가 더욱더 공부하며 배웠던 시간이다.
내 전공 브랜드디자인을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서양미술사적으로 수많은 학문들을 끌어들여 수업을 완성했다.
대학 강의는 내가 최고로 잘났다를 자랑할 수 있었던 '허세뿜뿜의 시간'이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지금까지 대학에서 들었던 최고의 강의라는 찬사와 교수님 덕에 꿈이 생겼다는 말은 스스로 허세심을 충족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진심 이런 허세력 때문에 강의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이없어 해도 좋다.)
나는 허세가 성장 동력이 된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물론 허세 속에 본질을 만들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은 있어야 한다.
말로만 실체 없는 허세만 부렸다가는 리플리 증후군이 되기 십상이다. 가끔 사회에서 허세만 부리는 껍데기 같은 인간들을 만나게 되는데, 본인의 노력이 채워지지 않아 자기 객관화 안된 거짓말쟁이로 보인다. 본인 빼고 주변 사람은 그 리플리적인 발언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워 보이기 그지없다. 그들이 헛소리만 하지 않고 조속히 본질과 알맹이를 채우길 바라본다.
허세가 멋져지고 내 힘이 되게 하려면, 허세를 완성할 수 있는 '자신의 다양한 노력'을 수반하여 그 허세심을 충족하는 본질적인 실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인간에게 허세가 많은 인생은 상당히 피곤하다.
이 허세를 완전하게 하는 건 오로지 내 노력밖에 없기 때문에....
이 허세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가자니 하루 24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P.S.
*지적 사치 얘기가 빠졌다. 어펜딕스에서 지적 사치를 논하고 마쳐야겠다.
독서를 그렇게 즐겨하지 않는 것을 고백했다. 그러나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독서 편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독서가 하기 싫을 때는 즐거울 글을 선택한다. 그냥 나 좋아서 하는 취미형태의 독서인데 이런 독서조차 허세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생활의 유용성 대신에 세련됨과 우아함을 만들 수 있는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지식 자랑을 하기가 어려운 책들이기 때문에 이런 책은 말로 전달하는 지식적 허세보다는 '우아한 사고와 세련된 아우라'를 만드는 교양적 허세를 완성해 준다.
이런 '지적 사치'는 실용성 없는 지식에 투자하는 사치스러움이라 볼 수도 있다.
이 글도 얼마나 허세스러운가? 결국은 나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싶다. 그러나 결국 이런 허세스러움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통해 실체화할 수 있다.
이 허세 때문에 조금씩 멋있어지고 있다.
내게 허세가 없었다면 살아가는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수많은 순간에 타협하고 게으르게 살았을까 싶다.
아무래 생각해도 허세와 잘난 척이 재수 없게 보이긴 하지만 꼭 필요한 소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