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Nov 19. 2023

52.시간은 약인줄 알았는데.

<상처 회복에도 노력이 필요하더라.>


 어떤 상처는 시간만 지난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모든 상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어떤 상처를 떠올리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일상을 다른 것으로 채워나갔다. 그 상처는 안 보이는 기억의 뒤로 밀어놨다.


 시간이 약이라며?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 상처도 있다.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아픔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료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처에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도망을 쳤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라며.

 그렇게 마음속에는 치유되지 않은 수많은 상처들이 비밀처럼 엉켜있다.


 그러다가 일상에 균열이 가고 내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그 모든 상처들은 한꺼번에 튀어나와 나를 사정없이 괴롭게 한다. 밝아 보이는데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별명이 '가장 긍정적인 네거티브'였다. 


 평온한 일상에서는 더없이 여유 있고 이타적이지만, 괴로운 일상이 시작되면 무척 냉소적이고 칼날처럼 변하는 극단적인 내 모습이 불편하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그 갭이 지나치다 못해 이건 지킬 앤 하이드 급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부정적인 감정에 참도록 지도했다. 나에게 분노나 슬픔이 생겨도 받아주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 혼자 감정 추스른 뒤 나오라고 했다.

 빈 방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슬퍼도 참아, 눈물이 나도 참아, 화가 나도 참아, 억울해도 참아.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늘 생글생글 웃고만 다녔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 "우리 인미도 슬플 때가 있니?"라고 물었는데 그때도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어머니께 학교 선생님이 나보고 슬픈 일도 없어 보인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왜 너도 슬픈 일 많다고 하지 그랬냐고 하셨다. 속으론 그래봐야 뭐가 달라지죠? 냉소적인 아이의 시작이었다.


 나는 일일이 슬픔과 상처를 해명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참다 참다가 하이드가 칼날을 꺼내 냉소적으로 세상에 대응하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데 그저 말로 내가 슬프다고 한들 그게 어떻게 해결이 되겠냐마는. 어떻게 보면 솔직한 마음의 표현도 해결의 아주 작은 시작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상처를 들여다보며 마주할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상처들은 나에게 흉터를 남기고 사라졌거나 마음속 깊이 보관되었다. 나는 일상을 바쁘게 사느라 모든 것은 잘 잊혀졌고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만 흐른다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많다. 우리는 사실 최선을 다해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그 상처를 이겨낼 방법을 몰라서, 시간에만 기대어왔다.

 지금도 잘 모르긴 하지만 일단 상처를 인정하며 셀프 위로를 해볼까 한다. 정말 사소한 상처는 묵혀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상처가 눈덩이처럼 뭉쳐져 나의 어둠을 채우고 가슴을 짓누른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상처의 치유. 이건 나도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상처는 살아가는 인생 속에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찾아야 한다.

 상처의 해결이란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짐이 조금 가벼워지고 이해의 감정으로써 상처의 눈덩이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과정일 것이라 짐작한다.


 시간 지나면 다 괜찮다는 말은 왠지 내 상처를 사소하고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서 안 괜찮아도 괜찮다. 

내가 나약해서도 옹졸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시간으로서 치유가 안 되는 상처도 있는 법이다.

 

 원래 인간은 못난 모습 수백 개를 숨기고 살고 있다. 상처도, 못난 모습도 있어서 더 나은 모습이 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핍을 통해서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를 다질 때가 많다. 어쩌면 이런 성장을 거듭하게 되며 상처에 조금씩 초연해지기도 할 것이다.


 상처받고 못난 모습을 제거하기보다 인정해보려고 한다. 

흉터가 남은 상처들은 시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흉터는 내 보살핌이 필요하다. 따스한 햇볕으로 상처의 눈덩이가 조금 줄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용감한 것처럼 행동하면 용감해질 것이고 행복한 것처럼 행동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매일 자신을 격려하라.

삶을 만드는 건 우리 생각이다.

-윌리엄 제임스-


 어떤 상처는 수백 번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미 납득하고 치유가 되기는 하는데, 생각해 보니 딱 한번 그런 경험이 있다. 

 대학시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든 시간 속에서 매일매일 시뮬레이션을 수백 가지를 돌려봤다. 어떤 변수를 적용해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납득을 하고 나니 조금은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음보다는 머리로 이해가 가야 상처가 치유되는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역시 글을 쓴다는 과정은, 내 마음보다 손이 더 정확한 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51.도서관 3분 컷에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