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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02. 2023

1.이 나이에 무슨 모델이야?

<이젠 하다 하다 모델을 한다고 난리네.>


올해의 마지막 미션은.... 모델을 한다고 또 난리를 치고 있다.(마음 속으로'만' 무서워서 난리가 났다.)


2023년도 끝나간다. 올해도 대부분의 순간을 후회(=낭비) 없이 잘 보냈다.


결혼 후 하도 엉뚱한 일들을 많이 벌이니까 남편은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는다.

저러고 말겠지도 아니다. 이번에도 단단히 해낸다고 난리겠구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좀 자신이 없다. 

나는 이미 한 달 반 전에 '시니어 모델 코스'를 등록했다. 개강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상당히 두렵다.

미리 글을 쓰는 이유는 도망칠 구실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끼가 없기로 유명했다. 

남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해야 할 상황이 오면 무조건 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사진 찍히는 것도 싫었다.

오죽하면 5살 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찍기 싫어서 도망가는 컷과 안 찍히려고 구석에 숨어서 엄마를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는 컷이다.(막장 불효녀를 용서하십시오. 그걸 웃기다고 찍어놓은 어머니.ㅠㅠ)

어려서도 보통 성격이 아니라서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면 야단법석이 났다. 그래도 어머니는 온화하신 분이라 늘 친절한 설득으로 나를 납득시키곤 했다.


그런 내가 무슨 가학증이 도져서 카메라셔터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모델에 직접 도전하겠다고 난리인가?

내가 봐도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어릴 땐 등 떠밀어도 안 한다고 난리 쳤는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어쩌면 이건 다 요가 때문이다. 

요가를 하고 나서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3배 이상 늘었다. 원래도 자신감이 차고 넘치는 성격인데 요가 때문에 아주 오만방자하게 내가 가장 못하는 분야들까지 마구 도장 깨듯 도전하고 있다.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들인데 내가 못 할게 뭐람?'

요새는 습관처럼 저 말을 하고 다니니 거의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방자함이다.


 그 결과를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시니어모델 코스가 끝나고 나는 정말 재능이 없어서 안될지도 모른다며 내려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재능의 영역으로 스스로 포기하지 않게 만들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이야 꼭 키 170cm의 8등신 미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룰루레몬 요가복 모델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다. 아시안핏을 위해 인디언처럼 생긴 독특한 외모의 사지가 짧은 모델도 있다. 그 핏을 보며 나는 아시안핏 룰루레몬 요가복을 고른다.

미국에서 사 온 룰루레몬 요가복은 기장이 길어서 수선을 해야 했다. 역시 정직한 아시안핏이 실패가 없다.


 세상에는 다양성이 필요하다며 어쩌면 나 같은 모델도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해보며 도전장을 내밀어본다.


한 손으로 몸을 들어 올리는 요가 동작을 완성하는 할머니 모델, 신박하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요가를 평생 해야 한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요가모델을 위해~


 그러나 사실 내가 시니어모델에 도전하려고 하는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내 옷장에는 예쁜 옷들이 상당히 많다.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운 옷들이다. 이 멋진 옷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쁜 구두도 많은데 이건 그림으로 남길까 생각 중이다. 

 미대 입시 이후 20년이 넘어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보려니 예전만큼 만력(만화나 그림을 그리는 능력. 필력의 변형 신조어.)이 안돼서 자꾸 게으름이 생기는 것이 문제랄까.


 올해도 내 모든 연봉을 털어 백화점 명품관에 쏟아부었다. 

 명품 옷은 수십 년이 흘러도 가치가 있다. 같은 옷을 40대에 입은 모습, 50대, 60대, 70대에 입고도 우아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고 멋지게 빈티지가 되어가는 이 옷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더욱 성숙되게 소화하는 그 모습을...


 나는 딸이 없어서 이 옷들을 물려줄 곳이 없다.

예쁘게 기록으로 잘 남기고, 이 옷들은 어떻게 아카이빙 혹은 기증, 증여를 할지도 고민 중이다.


어쨋든 지금은 옷장에 있는 이 옷들을 최대한 즐기고 싶다.

그러나 프로 집순이인 나는 이 옷을 즐길(=보여주고 자랑할)데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옷들을 기록함으로써 즐기는 기분을 완성하고자 한다. 기왕이면 아주 멋진 포즈로 이 옷을 남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모델의 끼가 필요하다.

현재 내겐 옷도 있고 몸뚱아리도 있는데, 없는 단 하나! 사진을 멋지게 찍히는 끼와 노련미가 없다.


 자신이 없어서 수강취소도 고민했는데, 이 글을 쓰며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나는 이 옷들을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즐겨서 기록으로 남겨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그 과정에서 모델 과정은 반.드.시 수료해서 끼를 1%라도 장착해 보겠다고!!


*시작 전부터 너무 기 빨리고 자신없고 무섭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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