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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24. 2023

43.해장 요가수련

<편견 없이 요가하는 편>


 과음, 매일의 음주를 근래 커밍아웃 하고 나니 더욱 나의 삶에 객관적인 방향이 보였다. 오히려 음주 사실을 숨기고 매일 마실 때보다 세상과 주변에 공표한 뒤 나를 그대로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금주도 성공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이 금주 과정이라 성공했다고 마침표를 찍지는 못하는 중)


 난 늘 절제하며 자기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 잘난 여자의 역할극'에 빠져있었다. 

 요가를 하고, 채식을 실천하며, 분노는 명상으로 다스리며 프로페셔널하게 직장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자기 계발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발전적인 모습. 이 얼마나 멋진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선별한 뒤 나의 결핍을 숨기니 어둠 속의 나쁜 생활과 부끄러운 버릇은 더욱 없애기 힘들었다. 나쁜 암덩어리가 음지에서 더욱 활개 치며 나를 점령하며 자기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어차피 대외적으로 나는 멋진 여성이니까. 이런 숨기고 싶은 모습은 주제와 관련 없는 부연 설명이나 스토리상 불필요한 요소를 자체 생략하는 영화적인 표현이랄까?


 그러나 진실은 술에 중독되어 있었고, 가공식과 배달 음식만 먹는 정크 비건에 가까운 삶이었다.

 요가 수련이 끝나자마자 매일 술을 퍼붓듯 급히 마시고 기절하여 잠에 들었다.

 지금은 금주한 지 한 달 반이 넘었다.(어쩔 수 없이 2번의 연말 회식에서 술을 먹긴 했지만, 혼술 하던 생활은 끝났다.)


 매일 요가하는 사람이 술을 즐겨 마시다니.

 술을 먹고 요가를 하다니.

 심지어 술 먹고 꽐라 되어 다음날 숙취에 허덕이는 주제에 해장으로 요가를 하다니.


모든 요가의 기본조차 거스르는 이런 선택을 하는 내가 어이없기도 하다.

아니 요가한다는 사람이 저런 절제 안된 행동을 하는 것이 정상이 맞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가란 무엇인가?

이것을 정의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이런 세속적인 모습과 공존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요가를 위해 현존하는 나의 일상 스타일과 인생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가 쉽지 없다. (물론 나쁜 점은 조금씩 개선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일상이 얼마나 기이하고 삐뚤어지며 자본주의와 경쟁사회에 최적화되었든 간에 나는 요가를 내 인생에 들여오고 있다.

  내 삶이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요가와 함께할 것을 미루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이런 복잡한 삶이 정돈되려면 아마 70대가 되어야 요가를 시작할 준비가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바쁜 것이 끝나면, 지금 힘든 시기가 지나면 언젠가는 요가를 해보겠다고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일상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난장판이든 요가는 매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가하는 삶의 모습이 저게 정상인가 싶기도 하다. 남들 보기에도 이상할 거 같아서 숨겨온 진실이다. 


 내 생활이 한심하고 통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매일의 요가를 위해 오늘 내가 만든 하루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일상은 일상이고, 수련은 수련이다. 

굳이 이분법으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 삶의 형태도 인정하며 요가수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비우고 싶을 뿐이다.

절제도 없고 과소비에, 일 중독에, 생활의 중도나 휴식도 모르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내가 요가인을 꿈꾸는 게 말이 되냐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즐기며 매일 함께 하고 있다.

세속적인 인간은 요가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요가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요가매트에 올라서기까지 스스로 갈등을 한다.

요가를 해? 말어? 오늘은 힘든데 하지 말까?

그렇다. 매일 요가를 하고 대체로 습관적으로 고민 없이 하는 수련이지만, 힘든 프로젝트들이 연속될 때 나도 스스로 무너지고 싶다. 오늘 딱 하루만 요가를 안 하면 안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선택하면 저렇게 기이한 순간에 수련을 하게 된다.

나의 하루가 얼마나 파괴적인 모습이었든 요가를 해보겠다고 기어서라도 요가 매트에 올라간다.

숙취에 시달리는 다음날, 회식후 술에 취해 돌아온 날 저녁, 몸살 감기에 시달리다 시체가 된 순간처럼 말이다.


상식의 틀을 깨면 어떤 상황에서든 수련을 못할 이유는 없다.

하루가 끝난 날 저녁. 요가를 위해 완벽하게 요가복을 입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묶고, 평온한 하루가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깨끗한 요가매트에 서서 수련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잠옷 채로, 속옷 채로, 또는 골프옷을 입은 채로 요가를 했다. 요가복처럼 보였던 많은 옷들은 사실 속옷차림이었다. 

퇴근 후 요가복으로 갈아입을 힘조차 없었지만 그렇다고 요가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소재가 타이트한 요가복을 입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꽤 많이 든다. 그게 귀찮아서 요가를 안 할 바에야 그냥 속옷차림으로 하자고 선택했다. 이게 별거냐 싶지만 매일 요가 수련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하고 있다. 내 수련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는 것이다.(어쩌면 내 복장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나의 머리는 헝클어져 난장판이었고,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거나 그 털이 잔뜩 붙어 청결하지 못한 매트에 서 있었다.

생각의 틀을 깨면 어떤 순간에도 요가와 함께할 수 있다.


오늘은 술에 취해서 간단하게 앉아서 안전한 수련을 할 수도 있다.

야근으로 인하여 피곤한 날 고민 없이 썬쌀루테이션만 10분간 할 수도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율리아 피셔의 말이다. “음악가라면 연습과 일상이 평생을 결정한다. 음악가는 평일에만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다. 주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생일에도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요가에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련과 일상이 평생을 결정한다. 일상이 난장판이었어도 우리는 수련하는 하루를 선택할 수 있다.

요가인이라면 오늘은 연휴라 패스하고, 일요일이니 쉬고, 야근했으니 안하고가 아니라 그냥 어떤 생활의 변수나 세상의 이벤트와 상관없이 매일 수련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정갈함이 없어도 내 일상이 얼마나 엉망일지라도 그냥 생각을 비우고 습관처럼 해보는 것이다.

중도도 절제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이것으로 그저 요가인으로 불릴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다행히 요가는 인생이 완벽하게 정제된 사람만 하라는 조항이 없다. 우리 일상이 어떤 모습이든 요가를 하기만 하면 된다.


 내 생활이 어떤 상황이어도 요가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이 모습이 상당히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가여운 중생일 뿐이다.

이렇게 나의 일상을 그대로 사랑하며 요가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 수련이 더 깊어져 내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 현재 직업은 상업과 자본주의 최끝단에서 소비를 종용하도록 사람들은 현혹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좋은 브랜드를 리서치하고, 직접 가서 보고, 이용하거나 사용하고. 직접 수많은 소비를 하거나 타인이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하루의 반 이상을 자본과 소비재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내 직업의 정체성을 빼고 요가의 멋진 모습만 생각하기엔 나 존재 자체가 더욱 모순이 된다.

 요가를 위해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의 모습과 매일의 1/2이상의 시간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요가를 하며 나자신을 수련하고도 싶고, 직업적으로 성공을 하고도 싶으며,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기도 하다. 

 튀긴 감자나 정제 밀가루로 만든 가공식품 같은 정크 푸드도 즐겨 먹으며 요가를 하고 있다.

 명품을 잔뜩 쇼핑한 뒤에 역시 럭셔리는 오늘 사는 게 제일 절약이라 만족하며 요가를 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이것 좀 사고, 와서 구경하고, 먹어보라고 디자인을 한 뒤에 요가를 하고 있다.

 내가 만든 제품들은 지구의 쓰레기 일부가 되어 환경을 해치는 것을 알지만, 멋지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요가를 하고 있다. 



 지난주말, 같이 요가 티처트레이닝을 졸업한 선생님들과 클라이밍을 했다. 전날 회식으로 과음하여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차분히(구토를 참으며) 인요가를 하고 클라이밍장에 갔다.

숙취를 참으며 모닝 수련을 하고 왔다는 나의 말에 한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완전 해장요가네. 쌤은 찐이다~"

달리 생각하자 나의 단점과 결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 수련을 선택한 '의지의 한국인'이 되어있었다.

요가 선생님들 특유의 유쾌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늘 나를 성장하고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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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수련은 몹시 위험하니 추천하지 않으며,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음주/숙취 상태에서 하는 수련에서 암밸런스나 챌린지 동작은 하지 않으며, 주로 앉아서 하는 안전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인요가를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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