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화려하지만 대부분 쫓기고, 굶주린 하루>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 보면서."
어린 시절 듣던 신해철의 도시인 노래처럼, 나는 쫓기는 도시인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쌉쌀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의 쓴맛을 느끼며, 점심은 샐러드 혹은 공복으로, 저녁에는 안주 삼은 음식과 맥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저녁 시간이 바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날, 집에 먹을 것이 전혀 없어 맥주와 시리얼을 먹었어요.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맥주에는 짭짤한 음식이 잘 어울리지만 달콤한 안주가 당길때가 있어요.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술을 배웠을때 엄마가 맥주와 아몬드초콜릿의 콜라보를 알려주었어요. 안 어울릴것 같았지만 맥주와 아몬드초콜릿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가끔 즐겨먹는 페어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맥주와 달콤한 안주와의 조화를 종종 즐기게 되었어요.
지친 우리의 밤에는 그렇게 달콤하고 알딸딸함이 동시에 필요한 시간입니다.
사회인이 된 지금은 바빠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시간이 여의치 않아 우연히 맥주와 시리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맛을 논하기 앞서서 생존의 페어링이었어요.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음식이 없어서 '나는 지금 먹을 것과 릴랙스를 할 액체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이죠. 잠을 자기까지 1시간 정도가 남은 시간, 빠르게 식사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환상의 조합, 그것은 맥주와 시리얼이었어요.
어린서절 시리얼은 우유에 말아먹는 아침 식사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시리얼은 맥주와 먹는 야참이 되었네요. 물론 맥주와 시리얼은 따로국밥처럼 둘을 따로먹는 것이 좋아요. 몸속에 들어가면 둘은 말아진 상태가 되겠지만...말아먹으면 좀 거북하기는 해요.
어른이 되면 엄청 멋지게 살것 같았는데, 현실은 텅빈 냉장고에, 회사에서는 입맛이 없어 밥을 거의 먹지 못해요. 입맛이 있어도 점심시간에 항상 할일이 있다보니 식사시간이 아깝기는 해요. 밥먹으러 나가면 동료들과 밥&커피 타임을 가지면 1시간이 끝나거든요. 다같이 모여 회사욕, 상사욕 하는 시간도 소모적이잖아요.
오래 살아남은 여자 상사중에 점심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고 다들 그저 하루종일 일에 절어있어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집에 가는 그녀들은 하루가 끝난 날 집에 가서 맥주에 시리얼을 먹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가정을 잘 꾸리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어요. 실상은 텅빈 냉장고에, 말 안듣는 자식일지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게 보입니다.
저도 겉으론 참으로 멀쩡하게 보이겠지만 부모 세대가 보면 놀래 자빠질 삶을 살고있어요. 냉장고는 왜 텅텅비었는지, 밥을 왜 하루종일 안 먹는지,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그들은 죽어도 이해못할 삶을..
그래서 그들이 이해못할 한번에 플렉스하는 삶을 살며 '몰아서 즐거움 찾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날의 휴가와, 어떤 날의 과소비와, 어떤 날의 왕창 플렉스를 위해 매일의 하루는 그저 견디고, 참아내고, 굶주리는 생활의 연속이네요.
뒷이야기>>>>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일상은 좀 많이 소박하고 처절할지도 몰라요. 인스타에 보여지는 멋진 하루는 대부분의 개미같은 삶 위에 이루어진 단편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멋진 하루'를 위해서 내일도 개미처럼 열심히 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