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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03. 2021

7. 미친 긍정으로 대하는 회사 미팅시간

<누구를 위한 회의인가? 참석자가 불리해지는 게임>


<두 가지 미팅에 대한 단상.>


1. 팀 미팅에서 배워가는 삶의 교훈


“내 왼쪽부터 돌아가면서 좋은 의견 하나씩 얘기하세요.”

공식적인 회의석상의 무거운 침묵을 깨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칭찬이든 비평이든 아이디어든 말을 시작해야 하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결국 답답한 상황에 윗분께서 강제적으로 순서를  정해줍니다.

 팀장님 옆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죽음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는군요.


 제일 처음 의견을 말하는 불운도 부담스럽고 제일 마지막에 말하는 불운도 싫습니다.

 스타트하는 분위기에 따라서 전체 방향성은 뒷동산부터 에베레스트까지 높이가 결정됩니다. 보통은 다 산으로 가지만 오늘은 어떤 산일까요? 뒷동산 정도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자는 이제 이미 앞에서 할 말이 다 나와서, 우물쭈물하고 마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그때 똑바로 정점을 찍지 못하면 그날의 회의는 쑥대밭이 됩니다. 제발 마무리를 잘 지어주세요. 기도하는 눈으로 동료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그래서일까요? 회의에서 항상 비어있는 자리는 팀장님 좌우 자리입니다. 모세의 기적을 보는 순간입니다.

 나도 저 위치에 가면 내 좌우를 밀어버릴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사람들과 가까운 것이 부담스럽고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데 부럽습니다. 다들 알아서 피해 가니..


 오늘 나온 의견 중 쓸만한 건 없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회의시간이라도 없으면 팀원들 얼굴 마주 볼 일도 거의 없잖아요. 미우나 고우나 얼굴 한번 더 보고 가는 겁니다. 얼굴 마주 보고 침 못 뱉는다는데 회의시간에는 얼굴 마주 대하는 중인데 침을 맞는 대담한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화끈하십니다.


 그나마 요즘은 코로나라 대규모 팀 회의를 지양하는 추세라 몹시 평안한 나날들이네요.



2. 동료와의 미팅으로 오늘도 스킬업!


“직접 찾아뵙고 미팅을 하고 싶습니다.”

동료로부터의 메신저가 띠링~ 울립니다.

저는 사실 미팅을 굉장히 기피합니다. 대부분 미팅에서 저는 소녀가장급 책임감을 짊어진 채 끝이 납니다.


 안건이나 기획도 없이 다짜고짜 미팅부터 잡자는 동료들의 요청은 들어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피한다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팀장까지 동원하는 상대편의 불굴의 노력 덕에 피할 수 없이 미팅에 참석합니다.


 그런 미팅의 대부분은 프로젝트 주제만 정해진 형태로 아무것도 기획된 것이 없으니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기획하여 준비하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1인 기업급의 책임으로 마무리됩니다.


 말로만 업무를 마무리하는 상대편을 부러운 눈으로 한번 바라봅니다. ‘아 저분은 오늘 두 다리 뻗고 자겠구나. 참 시원하시겠다.’

 오늘따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저는 항상 악몽을 꿉니다. 꿈에서라도 그 일을 잘 해결하고 싶어 고군분투하겠죠.


 작업을 해야 하는데 브랜드도, 카피도, 셀링포인트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위해 디자이너가 대략 위치 잡기용 내용을 작성하여 러프하게  시안을 만들어놓으면 그 러프한 카피와 문구들이 그냥 최종으로 진행되어버리는 기적적인 현상도 생깁니다.

 이런 엄청난 책임을 짊어질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디자이너도 미리 카피라이팅이나 기획을 공부해두면 좋을 듯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기획과 개발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하나의 형태를 이루듯, 디자인을 하면서 기획의 분야까지 다 넘겨받는 상황은 업무 경험상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 제품의 매출이 좋으면 회사에서 상을 줍니다. 해당 담당 연구원, 개발자, 마케터들이 수상을 합니다. 내가 한 디자인이 반응이 좋고 목표 매출을 달성하여 진심으로 기쁩니다.


 그런데 그 수상에서 매번 디자이너는 빠져있네요.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제가 디자인하여 참여한 수많은 프로젝트가 수상을 받았지만 디자이너는 단 한 번도 수상 그룹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같은 팀 디자이너들도 모두 같은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상을 받으려면 적어도 세계적인 탑 5 안에 드는 스타 디자이너로서, 국적도 외국이어야 하나 봅니다. 내국인,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상 욕심을 냈네요.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업무 경험치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이제 영업력만 갖추면 개인 스튜디오를 차려도 무리 없을 경력을 계속 쌓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회사여~


뒷이야기>>>

 오늘도 이렇게 긍정 업 해봅니다. 왜냐하면 내일도 회사를 나올 거니까요.

 회사가 나를 큰 사람으로 키우려고 이렇게 다양한 포지션을 주고 큰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그러면서도 오만에 빠지지 말라고 상을 안주네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회사에서는 욕 안 먹으면 일단 이득인 하루입니다. 이유 없이 윗분 기분이 나쁘신 날, 잘못 걸렸다가는 아주 불맛같은 회사생활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단 하나의 회사를 대표하는 내용이 아닌 재직했던 기업의 여러 상황을 하나로 모아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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