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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31. 2023

61.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서울

<숨차도록 달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 거 같다>


 서울과 뉴욕은 공통점이 많은 도시다.

젊은 청춘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

여기 살기 전까지는 참으로 반짝이는 도시인데 막상 살아내려면 너무나도 회색 도시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모를 차가움이 있다.

 따스운 밥 먹고 부모님 댁에서 학교 다니다 취업해서 출퇴근하는 사람은 알지못할 무서움과 막막함이 있다.

나도 서울에 오기 전에는 너무나도 이 도시를 동경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올 때 친구는 뉴욕에 있는 학교로 갔다. 나중에 서로 자리를 잡고 친구를 방문했을 때 너무 멋지게 살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에 뉴욕에 도착해서는 매일 한국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고 했다. 나도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매일 부산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었다.(남자친구가 화를 많이 냈다. 맨날 향수병에 빠져있냐고. 그는 서울남자였다. 고향떠나 자리잡는게 어떤 마음인지 전혀 몰랐을거다.)

그런데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 너무나 신나게 서울을 즐기며 살았다. 친구도 뉴욕에서 너무 재밌게 생활했다고 했다.


 서울은 나에게 있어 부모님이 안 나오는 청춘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 청춘 드라마에는 부모님이나 어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청춘들이 꿈을 꾸고 사랑하는 그들의 이야기와 시간만 가득 차 있다.

 내가 태어난 부산은 부모님의 도시이고, 서울에 홀로 독립하여 살아가는 이곳은 마치 나의 도시이자 진짜 내 고향이 되어야 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부모님의 감시 없이 막연히 희망찬 꿈을 꾸고 사랑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며 살았다. 취준생이 되기 전까지는.


 20대 중반에 강남에 면접을 보고, 강북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반짝이는 한강 옆의 불빛들이 너무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 면접에 통과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 속에 있었다. 

서울은 너무 멋지지만 내가 사는 원룸과 내 현실이 하나도 멋지지 않았다. 이틀 뒤 다시 봐야 할 토익시험을 생각하며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나도 과연 저 불빛 속에 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해서.

이런 좌절 속에서도 부모님과 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그러나 현실은, 취준생 신분으로 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부모님께 엄청나게 깨져서 괴로울수도 있지만.)


 그렇게 면접에서 떨어지고 돌아온 날은, 원룸이 더 좁고 춥고 배고프게 느껴졌다.

취준생을 몇 달 하다가 부산집에 잠시 쉬러 내려갔더니 냉장고 가득한 맛있는 음식과 따뜻하고 넓고 햇살조차 좋은 집이 너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풍족하지만 어느 것도 내가 서울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이었다. 

뭔가 편안하고 유복한 그 기운은 옮겨갈 수 없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불안하고 막연한 시간들이 있었다. 어제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를 보면서 20대의 주인공이 뉴욕에서 살아내는 상황이 나의 20대와 많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직업을 물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아직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재능과 현실의 문제 속에서 차선책으로 타협해 가지만, 그 안에서도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조금씩 찾게 된다. 

특히 그녀가 힘든 뉴욕생활 중 잠시 부모님 댁(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고향인 부산에 가는 모습과 닮아있었다. (두 도시 모두 밝고 따뜻한 동네다.)

고향은 따뜻하고 활기차고 행복한 느낌이지만 더 이상 그녀가 소속된 곳이 아니라서 뭔가 겉도는 모습. 그리고 거기서 그녀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뉴욕으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얼마전 퇴근길, 골목에서 우연히 위로 올려다보았는데 우리 집 창문에서 노랗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에 가면 남편도 있고 귀여운 고양이도 있고. 늘 같은 날들 중 하루였는데 그날따라 마치 나도 반짝이는 그 불빛 속에 들어온 삶을 살게 되었구나 실감이 나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종종 퇴근길에 집을 올려다보며 안정감을 찾는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인지를 못했는데 요즘은 이런 가정이 있다는 것이 더없이 좋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도,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집 주변 풍경도 너무 아늑하고 예쁘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요새 내 눈에 COZY 필터가 씐 건지 모두 '특별한 따사로움'으로 다가온다.


 남편의 용도는 서울 생활을 하며 따뜻한 불빛 속에 함께하는 풍경을 완성해 준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딱히 뭔가를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지만 이 집에 생명의 온기를 하나 더해주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프란시스처럼 나도 서울에 와서 늘 뛰어다녔다. 항상 바빴고 쫓겼다.(지금도 구두신고 열심히 뛰어 다닌다.)

 '프란시스 하'의 명장면이라고 생각되는 컷이 있는데,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을 배경음악에 맞춰 뉴욕거리를 정신없이 달려가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뛰기만 하다가, 중반쯤 그녀는 뛰어가며 점프도 하고 춤도 춘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어디를 향해, 왜 뛰는지 모르다가 점점 그 달림 속에서 즐거움과 작은 만족을 깨닫는 느낌이랄까? 

우리들 모두 두려움 속에서 달려가는 인생이지만 프란시스처럼 그 안에서 점점 달림조차 즐기며 나만의 여유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멈춰야 행복할 거라고, 막연히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려야하는 인생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달리는 것을 비로소 멈춰야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노련함을 갖추고 싶다. 

나는 숨차도록 달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 거 같다.


https://youtu.be/korQWF9DaFU?si=sQ63XpOixbdDhR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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