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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30. 2023

60.떠보는 화법

<진짜 배려하는 화법은 그게 아니에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타인과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떠보는 화법을 사용한다. 처음에 나는 그런 질문 뒤에 숨은 진짜 내막을 의심하며, 어떤 불손한 의도가 있는가 생각하며 여러모로 불쾌하게 느꼈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은 별 뜻 없이 그렇게 내뱉고 본다.


 떠보는 화법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려있는 대화의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보다, 대화 방법이 서투르고 생각이 짧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대화에 앞서서 자신의 생각이나 대화주제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말하는 습관이 없거나, 상대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구하는 대화스킬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원하는 정확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군더더기 없는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대화의 말문을 트는 데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하는 게 버릇이 된 것이다. 

늘 습관적인 떠보는 듯한 화법으로 빙빙 돌다가 상대편이 불편하거나 기분 나쁠 때쯤 본론에 들어간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대화방법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이 떠보기 화법으로 시작하는 대화에서 긍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떠보기로 말하는 사람은 본인이 그런 말버릇을 갖고 있는지 모를뿐더러, 그게 인간관계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떠보기 화법을 당하면 일단 상대는 방어기제가 발동하기 때문에 쉽사리 자기 정보를 공유하거나 열린 마음으로 화자의 말을 경청하기 힘들다. 그저 빨리 그 대화가 끝나길 바라면서 대충 아무 대답이나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래는 내가 회사생활에서 겪은 수많은 떠보기 화법 중 일부다.

(대부분 악의 없이 했던 말들이겠지만, 그냥 습관처럼 내뱉는 말은 본인에게 점점 해가 될 뿐이다.)


1. 바쁘세요?

 전화가 오거나 자리로 찾아오는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저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늘 항상 바쁜 상태였다. 상대편이 눈치 없이 "바쁘세요?"라고 물으면 "네, 너무 바빠요."라고 대화 시작조차 자르고 싶다.

혹은 내가 바쁘지 않다고 해도 방금 막 긴급한 업무를 끝내고 이제 화장실 한번 다녀올까 생각 중인데 그 찰나조차 끼어들어 나의 리듬을 깨는 것이 아주 불쾌할 수도 있다.

이 질문은 내가 바쁘거나 바쁘지 않은 모든 상황에서 기분이 좋은 적이 없다.


바쁘세요?라고 묻는 이유는 알겠다. 대화의 시작 방법을 모르는 아주 서투른 기술이다. 

나름 본인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바쁘냐는 질문을 통해 상대를 배려한다는 착각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바쁜지 안 바쁜지 솔직히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지 않나? 정말 그 대답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면 그 대화 방법은 떠보기이다. 다른 말을 시작하기 위해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안다. 

상대편은 내가 바쁜지 안 바쁜지 대답을 듣기 위해 묻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저 질문을 시작할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대답한다. 

"바쁘세요?" (이제 자기가 말할 테니 들어보라는 추임새라고 생각한다.)

"네, 말씀하세요." (어차피 내가 바쁜지 안 바쁜지 알려는 질문이 아니므로 바쁜지 여부에 대한 대답은 필요 없고 그래 말하여 보렴~하면서 기회를 준다.)


사실 사회생활 중에 배려나 개념이 없는데 자신은 굉장히 예의가 바르다고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들은 어김없이 이 화법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진실로 개념 있게 대화를 시작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새로 만들면 좋겠다. (심지어 어제도 바쁘세요?를 2번이나 들었다.)

어쩌면 별 뜻 없이 "바쁘세요."로 대화를 시작해 보았겠지만, 원래 모든 대화는 의식 중에 말한 문장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습관적인 문장에서 인격을 파악하기가 쉽다.


저 화법이 불편한 나는 다른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타인에게 어떤 말을 걸때는 사전에 이메일로 정리된 내용을 전달하여 정확하게 주제를 먼저 고지하고 시간의 선택여부를 상대에게 결정권을 준다.

"00에 관해 요청(설명) 드리려고 하는데 시간 될 때(통화 가능할 때, 미팅 가능하실 때) 알려주시면 보낸 메일에 대해 추가 설명 드릴게요."라고 메신저를 남겨놓는다. 전화보다 메신저는 시간의 보류가 가능하고 즉각 응답을 유예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약속 없이 면전에 나타나 바쁘냐고 다짜고짜 상대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말부터 던지며 떠보는 화법보다 훨씬 더 상대편을 배려하는 느낌이다.

상대편이 다른 미팅 중이거나 팀장님이 시킨 긴급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라면 잠시 뒤 본인이 연락하겠다는 형태로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2. 이거는 당연히 아시죠?(들어는 보셨죠?)

 대체로 회의 주관자나 상사들이 자주 하는 실수다. 미팅 중에 주요 안건을 알고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질문인데 마치 상대편에게 이걸 아나 모르나 캐물으려는 무의식적인 무시가 깔려있는 느낌이 든다. 상대를 깔보려고 의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고 하면 더욱 유의해서 화법을 바꿔야 한다.

회사에서는 정보 싸움이라 어떤 정보를 더 많이 공유받아 알고 있다는 것이 권력일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은 일부러 여러 가지 이슈를 본인만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듯 저런 화법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대체로는 효율적인 미팅을 위해 별 뜻 없이 확인차 물어보는 말이라면 상대편은 저 한마디로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을 수 있다. 

사회생활에 다방면에서 핵심정보의 목마름에 소외감을 느껴본 사람들에게는 저 말이 상당히 위압적으로 서열나누기를 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저 질문을 받는 순간 상대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좋은 의도였어도 거절하고 싶고 불쾌해진다. 어딘가 모르게 오늘 회의는 꽤 불편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상대편의 배려 없는 화법이 가득한 미팅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회의석상에서 어떤 이슈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하고 싶거나 모두 알고 있는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면 저런 식의 질문이어서는 안 된다.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화법을 조정해야 한다.

A는 당연히 아시죠?라고 물을 때 상대편이 그것을 모르는 상태면 '공유도 안 해주고 뭘 묻냐며.' 속으로 어이가 없거나, 정말 처음 들어 몰라도 모른다고 대답하기도 애매하다. 설사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그것 조차도 모를까 봐? 나를 얼마나 바보로 알면.' 하는 불쾌감이 들 수도 있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다.

"A이슈는 B라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추가 설명 필요하시면 요청해 주세요.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이렇게 말했을 때 회의가 끝나고 나서 추가 정보나 설명을 요구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상대편도 기분 좋게 추가 설명과 정보를 요구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저도 A이슈를 대략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설명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라는 형태로 양쪽 모두 긍정적으로 정보 공유를 완수할 수 있다.

말하는 쪽은 고압적인 화법으로 대화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배려있게 마무리 지었으며, 듣는 쪽은 지레짐작한 내용으로 오해해 업무를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업무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없다.



3. 어제 외근 갔다 사무실 복귀했어?

이 질문은 전날 외근을 갔다가 직퇴를 한 뒤 들으면 상당히 경계모드가 된다.

(실제로 어제 들었던 말인데, 직장상사가 아닌 친한 동료직원이 했던 질문이라 별다른 감정적인 동요가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했다면 상당히 경계태세로 돌입했을지도 모른다. 저 한마디가 이 글을 쓰게 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단초가 되었다. 고마워.)


만약 직장 상사가 "어제 외근 갔다가 언제 들어왔어? 사무실에 다시 들렀다 퇴근했어?"라는 질문을 듣게 되면 상대편은 불안하다. 어떤 의중인지 알기가 힘들다. 다음 대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마음이 부정적으로 세팅되기 시작한다.

외부 업무가 늦어져 사무실에 들어올 상황이 안되고 오히려 현장에서 야근을 했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고 업무가 애매하게 끝나 현장에서 직퇴를 했다면 근태에 대해 한 소리 들을까 봐 두려울 수도 있다.

물론 현장에서 직퇴를 하게 되는 경우 팀장님께 상황 보고를 하고 퇴근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서로 다 아는 업무량이니 알아서 퇴근하는 걸 상사도 이해할 거라는 추측성 행동은 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외근했다가 들어왔냐. 아니냐.'를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대화물꼬를 여는 방법이었다면 위 대화 내용을 다시 한번 고려하기 바란다.

저 질문은 진짜 외근 후 사무실에 들어왔다 갔는지 직퇴를 했는지 확인이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 좋다. 일부러 일상 속에서 상대편에게 경계모드에 들어가게 해서는 내가 원하는 답변을 순조롭게 얻기 힘들지도 모른다.

내막을 확인해 보니 어제 동료직원이 내게 저 질문을 한 이유가 있었다. 

전날 저녁 업체로부터 어떤 샘플이 3개 오기로 되어있었다고 했다. 도착한 샘플을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여 확인해 보니 개수가 2개가 모자랐다. 전날 누군가가 그게 도착한 걸 봤다면 몇 개였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묻는 것이 좋다.

"어제 00샘플이 오후에 도착했는데 혹시 도착할 때 봤나 해서. 2개가 없는데 애초에 1개만 온 건지 2개를 누가 빌려갔는지."



 두괄식 화법은 본론부터 정확하게 말하고 상대편에게 대답할 수 있는 선택적 자유를 줄 수 있다. 감정적으로 떠보는 화법은 원활한 대인관계의 대화법이 아니며 오히려 마음을 닫게 할 때가 많다.

캐묻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당신의 화법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별 뜻 없이 한 대화의 물꼬가 괜히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고 인간관계에 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당신의 패를 먼저 열어서 보여주고 본론부터 말하라. 물론 대화의 시작에서 마중물 같은 추임새 말이 필요하긴 하다. 그럴 때는 00하냐? 00가 봤냐? 00 했냐? 등의 질문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가벼운 인사나 상대편이 억지로 대답을 쥐어짜야 할 의문(질문)형이 아닌 평서형의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편이 낫다.

"바쁘세요?" 보다는, "업무 중 바쁘실 테지만 문의 사항이 있어 연락드립니다."라는 평서문이 더욱 자연스럽다. 상대편은 바쁘다 안 바쁘다를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기분 좋게 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넣은 떠보기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접근하게 된다. 이에 상대편의 마음이 열려서 내가 원하는 내용을 수월히 전달하거나 필요로 하는 핵심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말을 돌려서 하다 보면 결국에는 원하는 대답을 전혀 얻지 못하고 협의가 끝날 때가 많다. 한창 서로 '창과 방패'의 대화만 오가다가 끝난 미팅에서는 시간만 버리고 결국 원점이다.

그렇게 떠보는 식의 질문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여 대화를 시작한다면 더욱 더 상대는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듣고 있을 것이다. 


 항상 내가 먼저 오픈하여 의중을 밝히고 도움의 여부를 상대편이 결정할 수 있게 열린 화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이 상대를 내쪽으로 끌어들이며 원하는 대답을 얻게 되는 기술이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할 때도 인터뷰어로써 준비하는 질문 내용이 어떤지에 따라서 원하는 인터뷰 내용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명확한 질문의 내용은 인터뷰이로 하여금 진실되고 핵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어쩌면 완벽한 협의와 결론은,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의 프레임과 가이드라인 안에서 모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쁘세요?"같은 질문처럼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단도직입적인 화법은 좋지 않다.(저 질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만 단도직입이다. 타인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타인이 단도직입적으로으로 답변을 할 수 있는 '담백한 화법'이 필요하다. 

바쁘세요?는 본인 머릿속에서는 이미 배려있는 인사말을 끝냈다는 착각 후 '자, 다음 내가 할 말 하겠다.'라는 미숙함이 드러나는 언행일 뿐이다. 타인에게 단도직입적인 상황을 주려면 쓸데없는 예스/노 질문을 버리고 정말 들어야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쁘세요?"

"네, 많이 바쁩니다."

상대가 이렇게 대답했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저런 질문을 던졌는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배려있게 시작하는 자신만의 대화 방법이 필요하다.




 직장 상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그가 부재중일 때 부하직원에게 연락이 와서, "의논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언제쯤 자리 돌아오시나요?"라는 질문이라고 한다.

내가 저 말을 할 때마다 팀장님이 너무 놀라서 이제는 저 말을 할 때 사전에 오류의 상황을 해명하고 주제를 정확하게 공유하는 습관을 가졌다.

"의논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퇴사 & 임신통보 아닙니다. (*주제 : 신규 프로젝트 A부분 협의.) 오시는 시간 알려주시면 미팅룸 예약할게요." 

하도 놀라사니까 이제는 걱정하시는 부분을 아예 아니라고 정리한 뒤 주제를 말씀드리면 서로 기분 좋게 회의에 임할 수 있다.

 어제 2023년 마지막 점심식사를 팀장님과 나누면서 저 얘기로 한바탕 웃었다. 예전에 항상 직원들이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퇴사를 할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왜? 무슨 일 있나요? 큰일인가요?"라며 너무 놀랐다고 하시며 차라리 저렇게 사전에 시원하게 정리해 주어서 좋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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