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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an 07. 2024

13.좋아해서 선택해도 괴로운 게 일이라고요

<디자이너의 속내>


 대부분 대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진로를 못 찾기도 한다.

구직과 취업을 통해 비로소 앞으로의 업의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첫 번째 직장이 자신의 미래를 규명하게 되는 형태다. 오죽하면 일반 기업에서 묻지마 지원자를 필터링하기 위해 고군분투할까.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사무직종 동료들은 전공이 무척 다양했다. 이 업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취업을 위해 이 일과 업계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들은 우연히 선택하여 해내가면서 적성과 취향을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

모든 것은 확고한 목표와 결심을 통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연이 닿아서 선택한 일에도 본인이 정성을 다하고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가치 있는 성취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대체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서 이 일이 싫다=대충 해도 된다'로 귀결되는 것이 문제다.


 많은 일반 사무직동료들은 그들의 일을 싫어했다. "적성에 안 맞아~."를 습관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자매품 "나 올해 때려치운다."가 있다. 

적성에 안 맞고 때려치운다는 사람 절대로 못 나간다. 왜냐하면 진짜 적성도 모르는데 때려치우면 어딜 갈 거니?


 그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취업하려고 선택한 업종이라 애착이 없고 이 일이 싫다고. 아니 취업할 때의 그 간절함은 어디 가고 매일 회사에 저주를 퍼부으며 주변을 괴롭게 하는지.(누가 보면 잠시 기절한 사이 남이 대신 이력서 작성 및 면접 합격을 동반해 억지로 직장에 끌고가 노동하게 만든 줄?)

여기가 아닌 곳에 본인이 찾는 찬란한 미래가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더 나은 곳을 꿈꾸는 것 치고 불평 외에 다른 곳을 찾거나 달라지기 위해 별달리 노력하지 않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오히려 이들의 만행 때문에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이 책임 떠맡고 수습해 주는 과정에서 사회생활의 괴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아~ 무능과 무례가 탑재된 사람을 뒤치다꺼리하다가 사라져 간 수많은 소중한 인재들이여~


남편 회사에서는 이직에 성공하여 퇴사를 통보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덕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너 굉장히 유능한 아이였구나?"

이 회사에 재직하고 있어서 무능하고 게으른 놈인 줄 알았는데 잘 준비해서 점프 업하니 괜찮은 인재라는 자조적인 칭찬인 것이다. 차라리 적성에 안 맞다면 적극 노력해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 옳다.


 적성을 못 찾아서 직장생활이 괴로운 것이 아니다!


좋아서 선택한 일들도 '돈벌이라는 업의 범주'에 들어가면 필히 괴로울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일들은 모두 장밋빛 현실만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생계를 등에 업고 하는 일들은 그 무게라는 것이 있다.

비록 적성에 완벽하게 딱 맞는 일이라고 해도 타인과 함께하는 일들은 괴로울 상황을 동반한다.


취미가 아니고서야 경제적 가치와 노동을 교환하는 무게가 가벼울 리 없다.

심지어 돈 안 받고(돈 내고) 하는 취미조차 종종 꾀가 나고 힘든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돈벌이야 오죽할까.


 이곳은 내 꿈의 직장이 전혀 아니라는 사람은 솔직히 미안한데, 다른 곳에도 그들에게 적합한 자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현재 하는 일이 좋든 싫든 어떻게든 해내는 생활태도가 없는 사람은 머리로만 꿈꾸고, 입으로 투털거림이 끝일뿐이다.

이들은 몸을 직접 움직여 제대로 부딪히고 이겨내 봤던 '성취 경험'이 없다

상상의 적성과 현실 속의 다른 직업이라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적성이 아닌 일에 진심을 다하다가 전문가가 되어 오히려 즐김의 경지도 이해해 버린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어려서 미술을 시작해 미대입시를 준비한다.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하여 디자이너로 살아간다. 

좋아서 한 일이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은 직장생활 속에서 고통을 받기고 하고 스트레스에 빠져 발버둥 치기도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라 남탓 할 곳이 없다. 

묵묵히 이 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성장하는 것만이 위로가 될 뿐이다.


어떤 것을 아주 잘~하게 되면 주체적 선택이었건, 우연히 했던 선택이건 상관없이 결국에는 좋아하게 된다. 잘하기까지 나의 정성이 좀 많이 필요해서 문제지. 

결국 업의 즐거움은 적성이 아니라 내 노력으로 인한 '능숙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도 비교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 이 괴로운 직장 생활을 견디게 해 준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괴로울까?


 회사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긴급일정, 동료의 무능/ 무례/ 책임전가, 비용절감, 프로젝트 존폐 유무 등)은 일을 하는 것을 상당히 지옥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그 괴로운 감정을 누르고 작업에 몰두하는 순간은 분노의 감정은 사라지고 디자인과 나만 존재할 때가 있다. 나는 뭔가를 좀 집요하게 파는 것을 좋아하는데, 모르는 거나 새로운 것은 무조건 찾아내서 내 무지를 갱생할 때 그 카타르시스의 맛. 

심지어 알아내는 '과정'을 포함하여 알아낸 '결과'적인 모든 순간이 즐겁다. 


 디자이너들은 막연한 주제를 딥하게 파고 과정을 첨예하게 다듬어 정제된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만난 유.능.한. 디자이너들은 생활과 태도 자체도 깔끔한 스타일이 많았다. 

모든 것을 refine하는 것이 직업이니 일에 따라 사람 자체도 상당히 정갈하게 바뀌어간 느낌이다. 물론 아닌 디자이너도 있다. 아닌 사람들은 역시 생활과 업이 정제가 안된 느낌이었다. 실력과 인성도 그저그런, '저런게 디자이너 맞아?'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없진 않다.

(늘 예외는 존재합니다. 요새는 좀 많아져서 문제. 예외가 다수가 되기도 하는 시절.)


 이 직업의 장점은 아무리 회사와 사회생활이 힘들어도 디자인 자체는 싫지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몰입의 순간은 그 화를 잊게 하기도 한다. 타인의 무책임을 수습하며 분노의 태블릿 펜을 휘갈기지만 완성에 가까운 디자인을 보며 세상을 용서할 결심을 하기도 전에 이미 분노는 사그라든다. 

내 손에 들려진 디자인만이 유일하게 나를 위로할 수 있다.(역시 극極 아름다움은 극極 선이 되기도 한다.)

이 기쁨을 모르는 채, 싫기만 한 일을 대충 하며 월급날만 기다리는 직장생활은 얼마나 괴로울까?


 디자인 작업 자체를 좋아한다는 점은 이 일을 지속하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안 괴로울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일에도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대인관계와 여러 가지 실적을 위한 이해관계가 힘들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라는 거다.



'좋아하는 것은 일로 삼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사회생활이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싫어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덜 비참하다. 사람이나 사회생활 자체에 진절머리 나는데 일조차 괴로우면 대체 어디에 기대어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러니 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견디는 그대들에게 유감을 표한다.(그러나 불평할 시간에 뭐라도 하면 달라질 수 있다.)


아무도 못 믿고 힘든 시절을 보낼 때도 디자인을 개발하는 그 순간만큼은 물아일체가 되어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마찰이 생길 때도 내가 만든 디자인이 출시되어 세상에 나오는 기쁨을 보며 참아냈다. 


 오늘도 안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다. 그들은 혼자 죽는 법이 없다. 사회생활의 분노와 본인의 적성을 찾지 못한 애석함을 타인에게 푸는 경향이 있다. 안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선택한 그들은 주변에 화풀이하듯 살고 있다. 

예전에는 내 디자인을 망치는 일에 애착없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이 디자인은 내 얼굴을 대변하고 있기에 나만큼 그들이 진심일 수는 없겠지만 무책임하게 업무를 방치하는 행태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 일텐데. 그들은 출시된 제품 뒤에 익명으로 숨을 수 있겠지만 나는 숨을 수 없다. 못생기고 망한 디자인도 내 작업물 아닌가.(솔직히 스스로 부인하며 내 포트폴리오에서 삭제하기도 한다.)


 회사 탓을 하지만 결국은 본인 탓이다.

이 일을 하겠다는 것은 적성과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이다. 자기 선택도 책임지고 해내지 못하는데 다른 일은 어찌 잘할까. 언제까지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서 다른 꿈을 상상만 할 건지. 아니 정말 그 정도로 싫으면 나가서 하고 싶은걸 좀 하라고요.(아무도 안 말렸어요.)

현재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은 인생을 통틀어 체화된다. 오늘 하루의 모습이 당신 평생을 만들어가는 조각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


싫은 일 하는 것을 분개하는 것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는 그대여. 그 분노의 열정만큼 더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분풀이로 시간을 낭비하는 그대여..힘내~

은퇴하고 뭘 할지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 눈앞의 일들을 어떻게 잘 해낼 수 있는지 먼저 고민한다면 미래는 막연하지 않을지도.


(물론 괜찮은 담당자들도 많습니다만, 일부 무책임하고 입으로 불평만하며 일 안하는 변명거리 찾는 사람들이 은근 있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불편한 글입니다. 디자이너의 푸념이라 이해해 주시고, 디자이너와 일하는 분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 잊어도 좋습니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 적성은 안 찾고 말로만 떠드는 불평쟁이라면요. (이 상황은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정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일잘러 유능쟁이 기획자분들은 같이 읽으며 웃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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