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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18. 2024

70.두렵고 매력적인 인간관계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하다? 행복하다?_대화의 즐거움과 괴로움.>


새로운 만남을 늘 설레어하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정 반대편의 사람이다.


대체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으며 많은 관계는 나를 힘들게 하거나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으므로, 그 수많은 불편과 피로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과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대체로 내려놓는 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에너지를 들이는 것에 게으르게 응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주변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관계의 소홀함이라고 인지할 수도 있다. 친구, 부모, 지인들을 위해 정상적인(?)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다.

이게 비정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자기 세상에만 갇혀 사는 너드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의 범주는 무엇인가? 사실 내 에너지가 허용하는 선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흐름이다.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인간관계를 어려워하고, 관계의 지속에 대한 책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내 주변 사람들의 배려에 참으로 감사하다.


이런 외골수 성격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좋은 면을 바라보며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연락이나 만남의 빈도가 상식적인 수준이 아닌 것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주변에 남아있다.

참으로 다들 대인배가 아닌가 싶다.


해야 할 일들과 내가 만들어갈 세상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일을 빈틈없이 해내면서 인간관계조차 완벽하면 좋겠지만, 내게 그렇게 충분한 시간과 힘이 없다.

나이가 드니 더욱 해야 할 과업과 책임감이 늘어나니 늘 관계라는 것은 뒷전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한 번에 2박 3일은 드러누울 정도로 심각하게 에너지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건 집에 뒹굴거리는 시간이다.


최근 거의 10년 만에 혼자 해외여행이라도 갈까 해서 비행기표를 알아보다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와 포기했다. 그 순간 집에서 편히 앉아 음악을 듣고 창문 옆에서 글을 쓰고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싶었다.

먼 여행지의 행복이 아니라 이미 집에서 즐거운데 고생스럽게 여행을 갈 필요가 있냐는 남들 상식으로는 이해 안 가는 결정으로 휴가계획은 취소되었다.


어쩌면 지금 생활을 버텨내며 살고 있기에, 새로운 곳의 경험과 정보를 수용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다 썼다니,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집순이인 내 생활 흐름을 잘 아는 회사 동료가 질문을 했다.

"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


사실 나에겐 소소한 생활의 즐거움이 있지... 속으로 생각했다.

여행지의 설레는 경험 없이도, 사람들과 풍요로운 관계가 아니라도, 술자리의 흥겨운 만남과 유흥이 없어도.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원하는 형태로 생활을 만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일거리다.


그렇지만 사실 나도 잘 안다.

필히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정신을 잃을 만큼 멋진 일이다.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기준과 경험, 비슷한 지적 수준과 문화적인 교양이 통하는 대화는 어떤 것보다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이런 건설적인 대화 안에 의미 있는 마음과 진솔한 감정을 섞어 조화로운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혼자 소소한 생활을 보내는 것과 차원이 다른 기쁨을 만들 수 있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보다 더 큰 충만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런 사람과의 대화다.


이런 친구와의 대화는 1시간이 1분처럼 흘러가버린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관계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나만 바라보고 집중했던 시간에서 타인과의 교류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존재는 일생에 한두 명 나타날까 말까 한다.

살아가며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아예 못 만나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의 관계는 만족스러운 만남과 매력적인 대화가 아니라 의무감과 책임감을 동반하고 있다. 나와 결이 맞지 않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동료, 친구, 가족처럼 내 주변에 꼭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해서 나에게 행복한 경험만을 안겨줄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관계는 끊어낼 수 없으니 더욱 상처를 참으며 견뎌야 하는 존재도 있다.

이런 관계에서는 만족과 즐거움 역시 쉽게 얻을 수가 없다.

오히려 미움과 상처만이 난무할 수도 있다.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 관계에서 즐거운 대화와 의미 있는 감정 나누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는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거리 두기는 상처가 없다. 관계에 초연해지니 인간관계의 의무도 담백해지고 있다. 이미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 인정하고 주변에서 나를 많이 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관계에 거리 두기를 하고, 서툴다 보니 타인을 감정적으로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다.

어제 시댁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 나온 대화다.

F인 시동생이 가정법 질문을 하나 했다.


-시동생 : 만약, 내가 너무 속상해서 빵을 샀어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나 : 맛있게 먹어~~~

-남편 : 무슨 빵?

-시어머니 : 무슨 일로 속상해?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 아차 싶었다. 사실 나도 남편처럼 '무슨 빵? 맛있는 브랜드 빵 사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름 F처럼 따뜻한 말을 하고 싶어서 질문형 보다는 응원하는 맛있게 먹으라고 노력해서 대답해 준 건데, 내 대답도 시동생 입장에서는 오답이다.


만약 저 대화를 남편과 내가 단둘이 나눴다면 결이 맞는 말이 되는 대화가 나왔을 거다.

단맛은 000브랜드 빵이 최고지. 속상할 땐 짠맛 000 브랜드 빵이 맛있지 않나?

XXX 빵을 샀다고? 괜찮은 선택이네.

빵을 먹을 거면 그냥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 오 역시 센스!



마음 맞는 친구와의 대화는 역시 소중하다.

일생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아주 소중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그런 존재를 만났다고 해서 그가 배우자가 된다면, 앞으로 그런 건설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를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결이 맞는 대화는 가능하지만.

마치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갈라버린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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