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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19. 2024

71.비통과 수치심에 대한 소소한 마음가짐

<우리는 모두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감정이 감당이 안될 때,

이미 이 지구상 수십 명의 사람들이 겪었던 슬픔과 부끄러움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까?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이나 수치는 인류 최초의 감정이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맞이하는 상황은 다양하겠지만 비슷한 감정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죽음 앞에 슬프고, 이별 앞에 괴롭고, 자신의 실수를 한심하게 여기고, 해서는 안 됐던 말을 수치스러워한다.

살아가며 누구나 이런 일들을 통해 불행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겪어봤고, 힘든 상황에서 잘 극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가 평화를 되찾았을 거라는 추측은 나 역시도 이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누구든 잘 극복해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다면, 멋지게 말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없다. 이때는 사람이 좀 망가져도 된다. 체면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고 세속적인 진리로 스스로 다독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때 이성적인 근거로 판단을 하려고 하면 자신의 감정은 더욱 한심하고 괴로움도 커지게 된다.

가장 먼저 돌봐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다.


유치하든, 정신승리든 상관없다.

먼저 내 감정의 어둠을 잘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잘 사용하여 내 마음의 건강과 안녕을 찾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렇지만 사실, 너무나도 괴로울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몸을 일으켜 움직일 의욕조차 없다. 누워서 감정을 곱씹을 뿐, 이렇게 하면 더욱 침체된다.

그러나 이런 감정 속에 있다고 해서 주변에서 힘내라고 억지로 떠밀어 일으켜 세워서는 안 된다.

충분히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스스로 어느 정도 몸을 일으킬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때 스스로의 결심으로 몸을 일으켜야 한다.


다음 단계는 1)일상의 소소한 활동들을 해보는 것이다. 이 일은 금방 성과가 나오는 사소한 일이면 좋다.

미뤄둔 옷 정리, 쓰레기 버리기, 청소 같은. 사소한 소일거리의 성취는 마음을 조금 나아질 수 있게 한다.

이다음으로 2)건강한 생활 루틴을 몇 가지 이어서 해본다.

운동하러 가기, 도서관 가기 같은.

1)번을 통해 에너지를 약간 얻게 되었을 때 2)번 루틴을 하면서 조금씩 생기를 충전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절망 속에서 이겨낼 때를 대비해 평소에 건강한 생활 루틴이 몇 가지 있으면 좋다. 늘 해오던 루틴을 시작함으로써 생활의 균열은 조금씩 메워진다. 

대단한 위로나 상황의 역전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활동이 하나씩 추가됨에 따라 괴로움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루틴을 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 하기 좋다. 무의식적으로 평소에 늘 하던 일들을 해나가면서 그림자는 서서히 걷힌다. 

일상과 루틴을 되찾고 유지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치유에 가까운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삶의 만족감은 일상을 흐트러짐 없이 완성되는 것에서 얻기 쉽기 때문이다.



우아한 불행은 없다.

누구든 어떤 어둠의 감정 속에서는 초라하고 못난 모습일 수 있다. 바닥을 칠 때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못난 모습이 있다.

그런 감정 없이 인생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 없고, 다들 그런 상황에 못나고 한심한 모습을 달래며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구나 겪어온 일이라는 생각은 나만이 오롯이 겪는다는 외로움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멈추게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세상 제일 불행하고 비참하게 느껴질지라도, 다르게 생각하면 누구나 이런 시절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인생의 어떤 순간도 어두운 부분 없이 밝은 면으로만 완성될 수 없다.

매일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바랄 수 있지만, 이런 괴로운 순간을 잘 이겨내면서 인생의 다채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 

행복만 가득한 삶은 어쩌면 감사도 모르는 오만과 한심하도록 나태한 감정만이 넘칠지도 모른다.

세상에 길흉화복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어떤 순간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불행의 상황이 벌 받는 일이 아니며, 행복이 좋은 일을 했던 대가로 얻어지는 상이 아니다. 그저 세상은 그렇게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이유 없이 주어진다

세상이 권선징악의 순리대로 돌아가면 그야말로 평화롭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얻어지는 작은 기쁨도 있다. 수학 계산처럼 정확하게 선과 악, 행과 불행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도 아니고 내 잘못으로 발생한 일도 아니다.

그저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일들은 지나가듯이 생길 뿐이다. 누구 탓도 누구 잘못도 아닌, 살아 있기에 겪는 자연스러운 사건과 감정들이다.

살아있기에 겪는 인간미 넘치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생의 순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가장 어두운 순간의 한심한 모습을 당신의 대표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소중한 사람은 당신이 망가진 그런 모습조차 보듬고 이해하며 함께 잘 넘어갈 것이다. 가장 우울한 모습에 질려 떠날 인연이라면 애초에 진짜 인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모습만을 함께 해야 하는 관계는 진짜가 아니다. 

나의 밝으면 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을 보고도 곁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 여기고 남은 평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



남들도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타인과의 동일시는 나만 유별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살아 있기에 겪어야 하는 자연 발생하는 사건들은 내 손으로 어쩔 수 없다.

'너도, 나도, 누구나 이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른 이들도 다 겪어온 일들이다. 흑역사 하나 없는 사람 없다.'

참 마음이 편해지는 주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도 정신승리 하는 마음으로 힘든 시간을 잘 흘려보내지 못한다.

어느 날 괴로운 일을 겪을 때 이 글을 떠올리며 잘 이겨내 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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