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 아닐 때에도 얻을 것이 있었다>
"운동은 최소 주 2회 해야 합니다."라는 의사 선생님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봤다. 정설처럼 항상 어디서든 주 2회 운동을 강조한다. 사실 매일 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이 대체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의사의 최선의 조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가를 주 2회 건강지킴용 운동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가를 통해 나를 수련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물水로 몸을 닦듯 수련으로 나를 닦는 것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이 좋다.
요가가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면 역시 매일 하는 것이 맞다. 수련의 자리에 식사, 샤워 같은 것을 넣어보면 하루를 건너뛰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요가도 몸에 영양을 주는 식사와 육체를 닦는 샤워처럼 매일 해나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퇴근한 순간의 몸의 상태, 정신 상태를 생각해 보면 도무지 무언가를 더 챌린지 있게 할 상황이 못 되는 순간이 많다.
나도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심신이 모두 너덜너덜하여 자고 싶거나 힘들어서 드러눕고 싶은 순간이 많다.
이런 몸 상태로 수련을 할 수 있을까 싶어도 기다시피 요가매트에 올라서면,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게 된다.
물론 내 마음에 드는 최상의 상태로 최상의 수련을 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이렇게 나쁜 수련이 버릇으로 들까 봐 고민한 적도 있고 이렇게 집중 못한 요가를 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수련을 촬영해 리뷰해보면 부끄럽고 한숨이 나는 순간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허접하고 한심한 수련도 쌓아나가다 보니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의 수련을 나아지게 하고 있다. 그렇게 평상시 말도 못 할 컨디션으로 한심한 수련을 진행하다가 어떤 날 아주 컨디션이 좋은 날 같은 수련을 했을 때는, 마치 모래주머니를 벗고 뛰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안 좋을 때도 했던 수련은 모래주머니를 매고 했던 단련 같은 느낌이랄까? 여유와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수련은 깃털처럼 몸이 가볍다.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요가를 맞이할 수 없다. 최악의 상태에서 맞이한 요가에서도 성장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결핍의 순간에도 배울 점은 있기 마련이란 말에 공감이 된다.
불만족스러운 수련이라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이런 몸과 마음의 상태에서도 나는 수련을 해냈다라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심신의 상황이 안 좋아 수련에 집중을 못하고 대충 했거나, 부족했다고 느꼈던 순간도 아주 조금씩 우리를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맑은 심신일 때 느끼지 못했던 부족한 포인트를 파악할 수도 있다.
그렇게 최악의 순간에 해냈던 수련들은, 상황이 비교적 좋을 때 다시 하면 아주 가볍고 쉽게 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상황이 좋건 좋지 않건 늘 수련과 함께 하고 있다. 나를 더 나빠지게 하는 수련은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또 그런대로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고 배우고 있다.
늘 좋을 때만 함께하는 존재는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한다. 부족할 때나 모자랄 때도 있는 그대로의 나와 함께하는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못한다는 어떤 이유를 찾기보다는, 오늘 내가 어떤 상태이든 수련을 한번 해보며 그 자체에서 뭔가를 느껴 보자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무엇이든 그저 가볍게 시작하면 좋다. 너무 진지하면 시작이 두렵기만 하다. 부족하면 어떤가? 내일도 있는데..
덧글>
피로가 엄청 쌓여 졸음이 몰려오는 퇴근 후, 거의 눈을 감고 수련을 한다. 내가 잠을 자는 건지 수련을 하는 건지.
그런 반 가사상태에서도 수련은 흘러간다. 오랫동안 같은 수련을 반복했던 장점은, 의식을 놓아버린 순간에도 몸은 그 수련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말해주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그저 내 몸이 그걸 하고 있다. 잘하지는 못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