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주차. 백로가 지났다.>
2024. 9/12(목)
무의식적으로 회사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이를 이렇게 먹었다.
계절이 흐르는 것을 일상의 모습으로 관찰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글이다.
직장생활을 하면 계절이 어떻게 지나고 하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 느낄 겨를이 없다.
일에 집중하며 청춘을 보내는 사이 계절은 수없이 반복되었고 나는 나이를 먹었다. 시간 속에 있으니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마치 지구 속에 살고 있어서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인생의 반을 넘게 살아왔고,
막연하게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기록할 삶의 이벤트도 없다.(없을 것 같고 없길 바란다.)
그냥 오늘 하루를 느끼고 하늘 한번, 날씨 한번 느끼고 하루를 기록하고 싶었다.
내일이 되고, 내년이 되면 휘발되어 없어질 너무 사소해서 안 중요한 오늘의 날씨 이야기를.
그렇지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작년 이맘때 내가 뭘 입었더라? 햇 대추를 먹었던 게 언제더라? 같은... 일상의 사소한 행동이.
남들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시간들이라고 해도.
이런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맞는지 싶었다. 나라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시간을.
내 인생의 사소한 행동이 반복되어 온 것이 나를 이루었는데 나는 정작 그 사소한 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회사 일 외에 매사 모든 것은 흘려보내기 십상이었다.
세상이 만든 시간 속에서 빼곡하게 하루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정말 기억해야 할 나의 시간은 하나도 없다.
오늘의 시선에서 보면, 일상은 너무 사소하고 하찮아서 잊고 흘려보내기 마련이다. 그렇게 수없이 우주먼지로 사라진 나의 추억들.....
몇 년이 지나서 과거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때 꺼내볼 소소한 시간들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무척 대단한 일을 해오며 산 것도 없으면서,
나의 일상의 기억 조차 없는 삶이라니.
회사 - 집만 반복하며 살았다. 1년의 90% 이상은 이것 외에 특별한 상황이 없다.
내 인생은 그야말로 평범하고 변함없는 일상이 전부다.
그렇다고 무의미하게 버려진 인생이었을까?
아주 작은 일상에도 소중하고 기쁜 일들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소해서 경시해 버렸고, 결국엔 소소한 일상의 기억이란 지금에 와서는 거의 없게 되었지만.
며칠 전 백로가 지났다.
백로는 기온이 점차 떨어져 밤 시간 '흰 이슬'이 맺히고, 춘분 전까지 맑은 날들이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젯밤부터 거센 비가 내리고 있다.
잠을 깰 정도로 강렬한 가을 비였다.
긴 장화를 신고 출근을 했고, 출근길에 밤새 길냥이들이 안녕하게 있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절기가 바뀜에 따라 신기하게 시원한 기운이 공기 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연은 바쁘다고 빨리 오지도, 귀찮다고 늦게 오지도 않는다는 말이 기억난다.
자연이야말로 정말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듯 변함없이 찾아오고 있다.
계절의 흐름은 달력 속 숫자의 시간만 변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기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매년 이랬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올해 따라 더욱 신기하다.
가을이 오고 있구나.
소소하게 세월이 흐르는 것을 기록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