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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치앙마이 요가 리트릿 특별편4

늦잠이 그리웠던 게 아니었는데, 그냥 내 시간을 찾고 있어.

by 전인미D

우리가 주말을 좋아하는 이유. 언제 눈을 뜨든 부담이 없다는 것?

그럼 늦잠을 자야 이 평화가 설명이 될 텐데 나는 주말에도 아침 6~7시 사이에 기상을 한다.

그렇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까지라도 잘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만이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였을까.


치앙마이의 아침은 5시에 시작이 된다. 눈을 뜨고 천천히 침대 옆 조명을 켠다.

서두를 게 없다.

6시 수련 전까지 1시간 동안 이 새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커피포트에 생수를 채우고 물을 끓인다.

졸리진 않지만 머리를 맑게 하고 싶어서 커피를 한잔 마실 예정이다.

준비해 온 드립 커피는 첫날 모두 다 마셨으므로, 둘째 날부터 어쩔 수 없이 리조트에서 어매니티로 제공하는 믹스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한 봉지를 다 타니 너무 달다.

아침부터 이런 짜릿한 당도.. 다음날부터 믹스 커피 한봉을 뜯어서 4번에 나눠 먹었다. 커피 향은 나지만 맛이 거의 없는 커피향 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 앞서 너무 바쁜 일상이라 이런 사소한 것들을 준비 못한 게 아쉽다.

하지만 모닝 믹스커피인들 어떠리…한국에 돌아오니 믹스를 아주 연하게 마시던 그때가 줄곧 생각이 난다. 그 순간은 결핍이었지만, 그 모자람이 새로운 충만함이 되었다.


믹스커피로 상쾌한 아침이 준비되면, 6시쯤 방에서 나온다.

오솔길 사이로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듯 걸어가면 요가실이 있는 목조 건물이 나온다.

예전에 채플로 사용된 공간이라고 하는데 바닥과 벽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어 요가하우스로 쓰기 손색없는 공간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요가원으로 설계된 공간 같다.

첫날 어색했던 이 공간은, 나무와 햇살의 콜라보로 따사로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 이 순간이 참 그립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퇴근 1시간 걸리던 서울 지하철과 비교하니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방에서 출발하여 요가룸 도착까지 3분 컷이라니.

아직은 사방이 어둡다.

천천히 크리야수련을 시작한다.

중간중간 살짝 눈을 떠서 창 밖을 보면 조금씩 사방이 서서히 밝아오는 게 보인다. 햇살이 점점 창을 통해 길게 들어오면 이른 아침 수련이 끝나있다.


기분 좋게 1분 컷인 리조트 내 카페로 가서 아침식사로 준비된 그린 스무디를 마신다. 카페도 역시 목조건물 창문 사방에서 햇살이 눈이 부신 카페다.

이 리조트 단지 내의 대부분의 건물은 목조 주택이라 자연 속에 있는 것이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방에 돌아온다. 다음 아침수련까지 30여분이 남았지만 여유 있다.

두 번째 믹스커피를 아주 연하게 마신 뒤 화장실도 편안하게 이용한다.

그동안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환경 속에 살았다. 이곳에서는 쫓길 게 없으니 원할 때 언제든 화장실을 이용하니 속이 참 편하다.


시간마다 창 밖 이미지가 다채롭다(내 방 변기 뷰)

게다가 화장실 창 통유리로 정글이 보이는데 이 풍경이 또 입을 틀어막을 만큼 절경이다.(변기 뷰 마저 좋은 방이다.)

변기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면서 자연의 시간을 느낀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늘 화장실을 제때 못 가고 참느라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차고, 또 문명인으로써 아무 데서나 가스를 배출할 수 없으니 가스도 참고.

퇴근 후 집에 오면 허리를 90도에서 못 펼 정도로 아픈 경우가 많았다. 복부는 늘 가스가 차서 팽팽하고 딱딱한 상태.

그렇다고 낮에 뭘 많이 먹은 것도 없다. 하루종일 공복이었거나 차가운 샐러드 한통만 먹은 상태였지만 배가 늘 아팠다.


배가 아프면 감정도 다운된다. 아파서 기분이 안 좋은 거라 생각했지만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장 내 환경이 정신적인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에 나온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건강을 해킹하다: 장의 비밀]을 보면 장 내 미생물 환경이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우울증, 분노조절 등의 감정과 정신적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준다.

매일이 우울하고 지쳤던 건 어쩌면 서울에서 내 장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좋은걸 먹지도 못하고, 기체, 액체, 고체류의 배변을 시원하고 자유롭게 할 시간도 없었다. 장내 미생물은 환경이 얼마나 좋지 못했을지, 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치앙마이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이 단지 자연속 리조트고 현실적인 미션과 정신적 부담이 없어서 편안했던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장 내 환경이 조금씩 회복이 되면서 내 정신적 상태도 여유 있고 편안해졌다.

쫓길 필요 없는데 늘 쫓겼던 나는,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서도 느긋하고 담대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멘탈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장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마음은 늘 불안하고 쫓겼다. 장이 편안해지니 마음도 더불어 편안해진다.


늘 쫓기느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방금 손에 든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자주 찾아 헤맸다.

한 순간도 현재에 집중하고 머물지 못했다. 늘 다음의 일을 생각하고 다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지금의 온전한 나를 느낄새 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그렇게 매일이 지나면 그 시간 속에 내가 빠진 채 세월만 지났다.


우리가 주말을 기다리는 것은 늦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주말의 느긋한 시간들은 현재를 느끼고 머물게 해주는 시간이 된다. 쫓길 게 없다.

주말 아침, 오늘 내 장은 편안하고 마음도 여유 있다.


모든 사소한 시간에 내가 머물고 있다. 이 느긋한 충만함이 좋아서 주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쫓길 때는 주말마저도 이런 감정으로 대하지 못했지만, 치앙마이에서 배워온 마음관리 법이다. 천천히 그 시간을 누리는 것.


모든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채우고 싶었다.

물론 바쁜 직장인이 모든 평일을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하루의 시간이 빈다면 나는 천천히 모든 시간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여유 있게 시간을 대하는 법을 이해했달까….

이로써 집순이의 생활이 더욱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 밖에 나가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집이 천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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