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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고통을 줄이는 건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뿐

<잔인하도록 불공평하고 공평하게 이 시간을 지날 때다.>

by 전인미D

고통을 줄이는 것은 우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폭풍우 속 나뭇가지처럼 우아하게 휘어지면, 끝내 버티다가 부러진 나무 기둥보다 덜 아프다. 끝끝내 버티다 멋지게 전사한 나무 기둥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더 바람 따라 흔들린들 아무도 욕을 안 했을 텐데…

바람을 맞으며 휘청이는 건 못난 모습이 아니다. 나를 위협하는 상황들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나를 잘 지키고 생존해야 맑은 날을 위해 쓸모를 발휘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은 괴로워해도 없앨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는 것뿐. 진실이 어떠했든 그런 사건 속에 휘말려 있었다. 바로잡을 기회도 주지 않고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생각을 고쳐 먹기 어렵다. 상황을 내 손으로 수습할 수도 없다.

맞서 싸우고 당당하게 버티는 건 고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만 옳다는 고집 아닐까? 폭풍 앞에서는 그냥 숙여도 되고 흔들려도 된다. 해명을 하고 싶지만 폭풍 속에서는 어떤 소리도 묻힐 뿐이다. 머리가 흔들리고 몸이 바람에 따라 사정없이 휘청인다.

원래 중심이 없었던 사람처럼, 내 주장은 뒤로 묻어두고 지금 당장 이 폭풍과 함께 흔들리며 언젠가 잠잠해지길 기다릴 뿐이다.


천국도 지옥도 내 마음속에 있다지만 어떤 형태로 대응해도 천국은 오지 않았다. 불편한 상황을 직면할 때 직접 맞서 부딪혀도 괴로웠고, 비굴하게 순응하며 흔들려도 괴로웠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 덜 후회스러웠던 경우는 생존에 집중하고 흔들리는 중에 우아함을 지켰을 때였다.

장수처럼 난폭하게 도전하고 싸웠을 때, 당장은 멋진 대응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운 기억으로 머릿속을 아찔하게 했다. 고고한 모습으로 타협하지 않은 모습에 잠시 혼자만 도치했다. 사실 버티며 싸우던 모습은 억척같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고결한 비타협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유해진 걸까?

사실 이제는 일일이 버틸 힘도 없고 싸울 에너지가 없다.

그 어떤 반응도, 첨언도, 태도도 고수도 할 필요 없이 그냥 상황에 맞춰 흔들리며 흔들흔들 이 바람이 언젠가 곧 끝나지 않겠냐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저자세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매 순간 굴욕스럽지만, 내 판단만 멈추면 타인의 눈에는 그저 평온하게 동요하지 않는 우아함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극단의 분노 속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길 기대는 것이 멍청한 타협이 아닐 것이다. 나의 파멸은 내가 무너진 자리에 있던 생명도 함께 다친다.

우아하도록 유연함은 나도 살고 나를 둘러싼 세상도 지키는 방법일 게다.

다들 청춘일 때 열과 성을 다해 싸워보니 그게 얼마나 부질없던 짓인지 알게 됐기에, 이제 와서 선택하는 스탠스는 그냥 효율을 꾀하며 우아한 척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 던질 용기도 없다. 젊은 시절 부렸던 건 용기가 아니라 허세 가득한 객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고 몸소 싸워내서 지킬 수 있다는 만용.

지금은 한발 물러나는 것이 지혜임을 안다.

사실 피곤해서 그렇다. 매 순간 싸우고 바로잡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힘도 없다.


나이가 들고 삶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그 와중에 어릴 때보다 지켜야 할 것들도 많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지, 저항하고 고통스러울지 나의 결정일뿐이다.

받아들이는 마음도 편치는 않다. 억울함, 굴욕을 견디며 폭풍 속에서 시계를 보고 있다. 곧 지나간다는 것을 겪어봐서 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멈춰있지 않았다. 좋든 싫든 시간을 이기는 사람은 결국엔 살아낸 사람이다.


동물들은 태풍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 사냥을 나설 수도 없을 때 그저 굶주림을 침착하게 견딘다.

달리 방법이 없다면 담담하게, 그렇게 흔들리며 이 밤을 견뎌보는 거다. 이 폭풍이 끝나면, 그래도 꽤 우아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폭풍우 속에 뛰어들어봐야 온몸이 너덜너덜해지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저 야생의 동물들처럼 참고 지금은 잠시 기다릴 때다.

자연 앞에서 변명도 개인사 따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억울하겠지만,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겠지만 폭풍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공평하다.

착한 생명체라고, 막 새끼를 출산한 약해빠진 동물이라고 폭풍이 피해 가지 않는다.

잔인하도록 불공평하고도 공평하게 이 시간을 지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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